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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25. 2023

브런치 작가의 다이어리 쓰는 법

먼슬리vs데일리

일단 분위기를 잡는다. 버티컬을 모두 내려 빛 하나 들어오지 않게 한다. 거실의 조도가 어두컴컴까지 아니더라도, 초저녁의 어둠이 내린 집 같은 분위기가 된다. 채광을 막으려는 이유가 아니다. 아파트 앞 동과 대각선 옆 동에서 우리 집 거실이 훤히 내다보이는 점이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마주 본 아파트에서 한 사람이라도 우리 집 거실을 쳐다보고 있을 확률이 적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편하게 작업할 수가 없다. 그래서 버티칼을 내려 닫아둔다. 그러면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 편한데, 시간이 오래 이어지면 괜히 기분이 다운될 때도 있는 게 안 좋은 점이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이내로만 집중하고 끝내야 한다. 다이어리 쓰는 작업을 시작으로 한 글쓰기를 말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왠지 창을 훤하게 해 두고 싶었다. 버티컬을 끝까지 활짝 올리고, 그래 볼 테면 보라지 하는 심정으로 오픈된 거실을 바라본다. 멀리 안개 낀 산을 내다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져 좋다. 글을 쓴다고 책과 전자기기만 들여다보느라 침침해진 눈을 위해 부러 멀리 산을 가끔 바라보면서 눈의 근육도 이완을 한다. 볼 테면 보라지 라는 마음을 먹고 활짝 연 시도는 좋았으나 그 속에서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지는 못하는 내향인이므로 약간의 방어책이 필요했다. 창가에서 거실이 보이는, 혹여나 누군가가 볼 수 있는 각도에서 몸을 멀리했다. 거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앉지 않고 부엌 테이블 쪽으로 창가에서 멀리 자리를 옮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없어지질 않으니 어쩌겠는가. 이렇게 창문과 버티컬을 그날의 기분대로 열어젖히거나 닫으면 루틴이 시작된다. 습관처럼 처음 하는 일은 다이어리를 펴는 일이다.


다이어리에 먼슬리와 위클리를 주로 썼다. 그중에서도 먼슬리를 펼쳐놓고 줌인 줌아웃 하면서 이 달의 크고 작은 이벤트와 일상을 정리해 보는 것을 즐긴다. 이번 달의 굵직한 쇼핑은 아이 운동화 7만 5천 원, 수영학원 첫 등록 17만 원. 외식은 6회, 병원은 2회, 도서관 2회. 이런 식으로 큰 줄기를 살펴보면서 이 달의 흐름을 평가해 보는 시간을 갖는 일은 내 일상에서 어떻게든 이어지는 오래된 습관이다.

다이어리를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생긴 것은 글쓰기 때문이었다. 먼슬리에 적힌 굵직한 이벤트 같은 일 말고 소소한 일상을 자세히 봤다. 그러려면 데일리 다이어리가 다루기 좋았다. 시간대별로 오늘의 일을 쭉 적어나간다. 업무 일지처럼. 아침 7시 기상, 아침밥은 시리얼, 10시 노트북, 14시 라이딩, 15시 마트, 16시 요리, 18시 아이 숙제 등으로 적어 내려가다 보면 펜을 굴리는 찰나의 시간 동안 일상의 이미지들이 쓱쓱 스치면서, 그 시간의 행간에서 내가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마구 떠오른다. 디지털 방식의 글쓰기 외에 손으로 펜을 꼭 잡고 흰 여백의 종이에 적는 아날로그 식의 쓰기를 버리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가령 오전에 티브이를 잠시 보다가 심리 상담사가 말하는 '자존감'에 대한 생각이라던지,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에 보았던 옆동 부부가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에서 내가 느낀 점이라던지, 비가 오는 날에 시킨 배민 음식의 '젖은 영수증'에 대한 착안 같은 것들이 곁들여진다. 참으로 하찮고 소소한 일이지만 그 속에 글감을 캐치하는 일은 지겹지가 않다. 신기하게도 매일 그런 순간이 생긴다는 것이 놀라운 지점이다. 글감으로 떠올린 것들을 다이어리에 수기로 기록해 두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마다 그 글감에 대해 키보드로 문장을 만들어 단락으로 완성한다. 도토리 모으듯 써놓은 단락을 보면 안도한다. 내가 계속 썼다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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