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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ul 18. 2023

뜻밖의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순간

은밀한 깨달음

브런치에 글을 50편 발행하겠다.

그렇게 작정하고 목표를 향해 갔을 때, 내게 50편의 글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겪는 수많은 일이 고구마 뿌리처럼 주렁주렁 얽힐 수밖에 없다. 좋든 안 좋든. 마침내 목표에 도달한 자는 해냈다는 성취감 뒤로 나만의 역사가 새롭게 쓰일 것이다. 때론 보이지 않는 성취가 더 무서운 법이다.


학교도 그렇다.

학습 목표를 설정했더라도 그것만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이 의미 있는 이유는, 단지 그 목표점배워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존 수영을 배운다 하면 수영장에 들어가서 생존 수영 스킬만을 배워오는 것이 아니다. 생존 수영에 대한 학습 일정이 잡혔을 때 2주 전부터 교육은 시작된 셈이다. 반친구들과 수영장을 간다는 사실에 들뜬 아이들은 선생님께 평소 하지 않던 질문을 해대고,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이런 식의 교육을 하신다. 거기 가면 노는 거 아니에요. 수업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무례하게 짓궂은 말 하는 아이들이 꼭 있다.


놀아요. 라던지

 해요. 라던지.

학급 아이들 중에 그렇게 말을 하는 아이가 있으면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따끔하게, 노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고, 왜 배우냐면 이러저러하기 때문이다라고 응답한다. 식상하지만, 선생님이 바람직한 논리를 말해야 하는 이유에는 깊은 뜻이 있다. 모든 아이들이 다 듣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도 선생님께 저렇게 버릇없이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내뱉으면 이런저런 게 잘못된 거구나라고 아이들은 배운단 말이다.


수영을 하러 가기 전날 담임선생님은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며 여러 가지를 전달한다. 수영복 수모 수경을 챙길 것. 머리는 똥머리를 해 올 것. 머리 감고 혼자서 머리를 닦을 수 있도록 연습해 올 것. 그 전달사항을 아이들에게 말하면서 한 번. 가정에서 엄마가 지도하면서 한 번. 친구들과 한 번. 여러 번 배우는 것이다.


수영 첫날 아침. 수영복을 입고 갈지, 그냥 가져갈지, 가서 옷을 벗고 수모와 수경을 어떻게 쓸지, 혹시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졌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구할 것인지, 물속이 깊으면 위험하니까 혹시나 선생님들이 너를 못 볼 수 있으니까 최소한의 안전거리는 확보는 스스로 체크해야 한다는 등의 엄마와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는 일. 다 교육이다.

 

굳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단체 생활이므로 덤으로 배우는 게 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수영을 가기 위해 대절한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데 아이가 속한 반은 나머지 차량에 뿔뿔이 나누어져 타야 했다. 8명씩 다른 반 차량으로 가서 타야 하는데, 그런 돌발상황에서 누구와 앉을 것인지, 내 짝이 없을 수도 있다면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도 안 겪었던 경험을 하면서 배운다.


수영장 선생님은 그날따라 엄격하고 무섭다. 많은 인원을 통솔해야 하므로 지시적이고 매정하게 말한다. 몇 명씩 들어와서 옷을 벗고 수영복을 갈아입는 과정에서 누구는 수영복을 미리 입고 와서 '저 친구처럼 내일부터는 수영복을 입고 오세요.'라는 말을 듣고 빨리 옷을 갈아입는 자는 수영장으로 먼저 가는 걸 보면서 내 행동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느린지 빠른 편인지 확인하며 단체 생활 속에 내가 더 잘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소 체험한다. 이런 게 사실 가정에서는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다. 비슷한 또래들이 단체로 움직일 때 내가 그 상황에 맞게 내 행동을 눈치껏 조절하며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일. 그 속에서의 좌절감, 또는 성취감.

수영 교육을 통해 단지 수영뿐 아니라, 여러 좌절을 겪으면서 때로는 기분이 상한 감정도 느끼면서 또 한 뼘 성장하는 아이를 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브런치에 글 사십 편이라는 가시적 결과만이 다가 아니다. 이만큼 써오면서, 그간 해댄 좌절과 내적 갈등이 더 크게 작용한다. 브런치에 입성만 하면 우아하게 글을 취미 삼아 쓰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제일 먼저는 글감에 허덕였다. 매일 쓰고 싶은 욕심은 머리끝까지 차 있는데, 조급한 마음은 일상에 둥둥 떠다니는 소재를 볼 시야를 차단했다. 쉽고 빠르게 쓸 궁리를 하느라 째깍째깍 시간이 가는 것만 느껴졌다. '매일 쓰면 뭐 해'하는 내 마음의 유혹은 여유를 찾게 했지만, 기한 없는 휴식을 불렀고 게으름이 번졌다. 지금도 그런 마음의 싹이 돋으려 할 때마다 나를 단속한다. 글 50편을 향해 가는 이 여정에서, 배워가는 '무언가', 그것이 다음 100편을 향해 갈 때의 진주 같은 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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