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는 공간이 중요하다.
집 안에도 안방, 부엌, 거실, 아이방 곳곳에 나만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만들어 두는 편이다. 조금의 영역이란 독서대가 하나 올라갈 만한 넓이를 말한다. 어느 장소로 이동을 하든, 그곳에 앉으면 나만의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도록 환경을 설정해 뒀다.
무엇에 제일 예민한 사람인가.
무인도에 갈 때, 어떤 것을 세 가지 가져가겠습니까.라는 식의 인생 가치관, 인생에서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류의 질문에, 삼십 년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선명한 대답을 못 내놓고 살았다. 이제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단 한 시간이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하고, 독서대 하나 올라가는 테이블 귀퉁이 자리라도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게 없으면 삶의 에너지가 바닥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짧은 몇 줄의 문장을 어렵게 얻고 깨달았다. 혼자의 시간과 공간을 사랑한다는 말은 곧 밖을 나서는 순간, 나만의 시공간이 사리지게 되는 셈이라 에너지가 줄줄 새는 것과 같다.
택시 탈 때 문제가 생긴다.
한 공간에 낯선 타인과 있는 게 불편하다. 내 공간을 중요하게 여겨서,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그렇게 어색할 수 없다. 내 돈 내고 택시를 타면서 편하게 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죄다 안 좋았던 기억들 뿐이다. 택시를 탔는데 담배 냄새가 안 나고 운전기사 아저씨가 적당한 말만 하고 적당한 속도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내 '적당함'에 대한 바람은 쉽게 충족될 때가 잘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첫 번째로 일단 차에 탔을 때 공기 자체가 안 좋을 때가 있다. 담배 냄새라거나, 환기하지 않은 매캐한 냄새, 아니면 더운데 에어컨을 안 틀었다거나, 추운데 창문을 여는 등 말이다. 두 번째,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투에서 예민해질 때가 있다. 직접 내게 하는 말 말고 본인 개인 통화를 하시는 분이 있다. 그런데 그런 통화에 욕이 삼십 퍼센트쯤 섞여 있다면 듣기 거북함을 넘어 불쾌하다. 세 번째, 운전을 험하게 하실 때가 있다. 갑자기 크랙션을 빵 하시면서 욕을 하신다던지, 빠르게 가시다가 옆 차선으로 변경을 하신다던지, 급 브레이크를 밟으시는 경우다.
최악의 경험은 이런 경우다.
목적지에 가려고 아이랑 기차역 앞에 줄지어 선 택시를 타서, 목적지를 말했는데, 내리라는 것이다. 뒤에 있는 차를 타라고 한다. 순간 '우리의 목적지가 문제가 될 수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역에서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까지는 17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고, 우리 집이 있는 평범한 동네를 택시 아저씨가 마다할 합리적인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고, 아이와 탔는데 내리라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승차 거부하시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아이랑 불쾌하게 내렸다. 그리고 바로 검색했다. 택시 승차 거부 신고법. 증명이 돼야 하는 게 포인트였다. 타면서 녹음이나 녹화가 돼야 했다. 승차 거부하는 상황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신고가 가능했다. 차 번호를 정확히 외우고 핸드폰 메모장에 적었지만, 그 증거가 없어서 신고하지 못했고, 속상함에 화가 난 그날의 기분은 오래 기억되고 있다. 그 택시 기사 아저씨는 내 뒤에 있던 젊은이들을 태우고 떠났고, 왜 우리가 내려야 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택시에 대한 내 기억이 더 안 좋아진 사건이다.
속에서 화가 끓는다.
목적지로 가는 길을 일부러 빙 둘러가는 경우가 있다. 더 멀리. 최단 코스를 내가 아는데, 둘러가는 걸 보면서 앉아있는 마음이란. 그럴 때 왜 이길로 가시냐, 저 길이 더 빠르지 않냐고 하면, 택기 기사 아저씨의 대답은 뻔하다. "아인데, 이 길이 제일 빠른 기라요." 아저씨의 태도는 뻔뻔하고 능청스러우며 의뭉스러웠다.
모든 택시가 그렇지는 않다.
친절하신 분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내 경험에는 좋지 않았던 순간이 더 크게 작용했고 그래서 늘 의심하는 바람에 작은 상황도 더 크게 해석해서 받아들인 바가 없지 않다고 본다. 미리 마련된 나만의 비합리적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 돈 내고 타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공간이 택시라는 생각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세 번은 생각한다.
택시 탈 일이 있으면, 그 택시를 안 타고 이동할 방법에 대해서 경우를 더 따져보는 일은 내게 일상이다. 어떤 영역에 예민함을 갖고 살면, 까칠해진 마음 탓에, 좋은 선택지임에도 거부하게 되어, 오히려 내 일상이 다소 불편해지는 어려움을 도맡아, 사서 고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혼자 있는 데서 얻는 만족이 크다 보니, 타인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불편함이 가중된다. 이번 생은 어쩔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