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 깊이 새겨지는 것은 따로 있다

잔소리를 하고 있다면 살펴 볼 것

by 우즈

병원에서 쓴소리를 듣고 왔다.

한 달 전 건강검진을 했는데, 피검사 결과 안 좋은 부분을 콕콕 짚어주신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네요. 당화혈색소 수치가 이러면 당뇨 직전까지 간 거예요. 재검을 해 보시겠어요." 지긋지긋한 콜레스테롤 수치다. 먹는 음식 중에 콜레스테롤 관리에 안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일주일에 세 번이라도 숨이 차도록 삼십 분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체중이 일 이년 사이에 많이 늘었던데, 이건 체중을 조절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살을 빼고 운동을 하라는 말이다.

의사 선생님 소견을 듣는 순간에, 다른 큰 병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하면서, 동시에 식단과 운동만 조절하면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비교적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다고 여겨, 우쭐해지지만 잠시 뿐이다. 지 않은 나이와 함께 한참 커가는 아이를 보면, 건강히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점점 뚜렷해진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안다.

'그렇지, 그간 너무 나태해졌어.' 하면서도 집으로 오는 순간, 어제와 같은 일상생활을 하는 나를 목격한다. 단팥빵과 냉장 커피로 끼니를 때우고, 육 개월이나 등록해 둔 헬스장에 안 간 지 보름이 넘어가고 있다. '오늘 당장 바뀌지 않는다고 뭐 어때.' 하면서. 그 '오늘'이 '몇 달'로 이어지는, 무서운 말인 줄 무의식적으로 눈치채고 있어서, 더 껄끄러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돌아서 다른 일에 몰두해 버린다. 오늘 병원에서 들은 말은 못 들은 척, 무시하고 하던 대로 사는 내 모습이 나도 못마땅하다. 반복된 습관의 고리를 끊기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다.


내 모습에 못마땅해질 때, 잔소리가 늘어난다.

살을 빼라는 의사의 처방이 있음에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내 아이가 그러는 꼴은 참을성 있게 보고만 있지 못한다. 마침 양치질을 제대로 안 하는 아이가 눈에 걸려들었다. 이 사이에 음식 찌꺼기가 그대로 끼어있다. 아무리 치과 선생님이 '양치 열심히 해야 해요. 충치가 생겼어요.' 해도 하루하루의 칫솔질을 대충 해버리는 습관이 있다. 대충 해치우는 아이를 보면서, 내 모습을 보고 모방하나 싶어 '아차' 싶다. 계속 대충 하다가 이가 썩고, 나중에는 '내가 어릴 때 왜 그랬을까' 하며 과거를 후회했던, 과거 내 후회의 흔적들을 다시 상기다. 아이도 그렇게 될 미래를 잠시 상상만 해도, 괴로워서 '지금 여기'서 호통친다. 습관이 중요하다며, 제대로 앉혀서 이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다시 닦아주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나도 제대로 안하면서, 아이한테 훈계하는 자신이 창피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대단한 어른인 척, 연기가 가증스럽다.


과연 잔소리가 제대로 먹힐 것인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이미 엄마가 한평생을 겪으면서 몸소 깨달은 바라며, 대단한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마냥 잔소리가 이어진다. 내가 잘한 것은 그대로 물려주고 싶고, 못한 부분은 '내가 해보니 이렇더라.' 하면서 '너는 내가 못한 걸 제대로 해 보거라' '루틴이 중요하다' 하면서. 아이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바라는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헛수고다. '소리' 뿐인 말은 힘이 약하다. 제대로 새기지 못한다.


뼛속 깊이 전달되는 말은 다르다.

내가 깊이 절감하지 못한 부분에서는 잔소리를 아무리 해대도, 울림이 크지 않거나, 하다가 때려치우게 된다. 결국 부모가 하는 만큼, 그 어른이 제대로 뼛속 깊이, 인생 전체를 두고 실천하는 것만 아이에게 전달다. 정작 그 부모가 잔소리 이면에 하고 있는, 실제 모습이 더 중요하단 말이다. 아이 앞에서는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부모 자신은 의사 선생님 지침을 못 들은 척 으레 넘겨버리고, 건강 관리를 안한다면, 그 모든 걸 보고 배우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타인에게 옳은 소리를 내뱉고 있지만, 정작 자기 관리는 뒷전인 태도, 의도치 않아도 그걸 고스란히 되물려주고 있는 셈이다. 암묵적 메시지가 이렇게 중요하다.


그 부모의 핵심 가치.

그것 한 두 개 정도가 속에 새겨지고 자식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려고 애를 쓴다. 내가 는 만큼, 내가 이뤄가는 부분의 10분의 1 정도만큼 만이, 아이에게 가 닿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푸시하기보다, 나를 열 번 더 채찍질하며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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