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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10. 2023

책 한 권, 영화 한 편, 그림 세 점, 음악 세 곡

다양한 텍스트

상이 있으면 될 줄 알았다.

더 정확히는 노트북만 켜면 글을 쓸 줄 알았다. 노트북을 켜기까지 많은 유혹과 그거 해서 뭐 되겠어라는 자기 비하가 문제라고 여겼다. 충분한 시간이 없어서라고도 생각했다. 여유롭게 워밍업 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육아와 살림에 너무 정신없이 살고 있어서, 두세 시간 정도의 연결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므로 나는 글을 쓸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시간도 있고 에너지도 있고 책상이 있어도 글을 쓰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의 무력감이란. 억지로 앉아 있는 시간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너무 책, 책, 책, 글, 글, 글을 써야 해. 하는 나의 억눌린 의무감이 나라는 감옥으로 더 빨려가는 듯했다.

 

생각하고 있어야 했다.

내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해서 말이다. 마지막 문장이 어디서 어떻게 끝났는지 늘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하는 거였다. 실제 앉아서 키보드를 토닥이는 행위보다 중요한 지점이었다. 하루 종일 다음 쓸 문장에 대해서 속옷을 계속 입고 있는 것처럼, 내 정신에 붙여두고 있는 행위 말이다. 그러면서 일상생활을 변함없이 하는 거였다. 그러면 냉장고 문을 열다가도, 현관문을 나서다가도, 예능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하는 한 마디 대사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우연과 순발력, 열정을 키우려면 다채로운 상황 속으로 나를 던져야 해요. 예컨대 열두 시간 동안 책을 읽고 글만 쓰기보다는, 책 한 권, 영화 한 편, 그림 세 점, 음악 세 곡을 감상하는 편이 낫지요. 우리의 뇌는 매우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자극과 연결될수록 아름다운 우연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요.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예컨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들으면서, 마이클 온다체의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읽고, 앤서니 밍겔라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보고, 이 영화 속 사막의 배경에 어울리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도 읽어보고, 사막에 관련된 그림이나 사진도 찾아보는 거예요. 어휘력과 아이디어는 같이 오기 때문에 따로 단어 공부를 하기보다는 이렇게 텍스트 전체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공부가 필요해요. 때로는 없는 단어를 창조해 낼 정도로 도발적인 상상력이 필요해요.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선 언어를 뛰어넘어 사유해야 해요.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프로젝트 수업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이번 주제가 '날씨'라면 날씨에 관한 경험을 떠올려 일기를 써보고, '날씨'와 관련한 직업을 탐색하고, '날씨'와 관련한 과학지식을 공부하고, '날씨'와 관련한 앤서니브라운의 천둥번개 치는 날의 그림이 있던 그 그림책을 본다던지, 우산 만들기, 구름빵 만들기, 태양을 그려본다던지 하는 식으로 뻗어나가는 수업말이다. 영어로도 cloud, wind, sun, rain 하는 식으로. 마치 프로그램 '알쓸인잡'에서 소설가 김영하물리학자 김상욱의 대화가 섞이는 것처럼 지식의 변주가 일어나게끔 하는 것이다. 소설가, 영화감독, 아이돌, 물리학자, 수학자, 역사학자가 함께 하는 토론의 장. 여러 분야의 지식인이 함께 하는 대화에서 퐁퐁 튀는 지식의 접점을 보듯 글도 확장해야 하는구나.


글을 계속 쓰는 사람에게도 그런 훈련이 필요했다니. 책만 보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감을 찾아가는 것이 방법이란다. 음악에서 소설로 영화로 다시 소설로 말이다. 막연하게 일상에서 떠오르는 단서를 잡아채는 일로 글을 막 쓴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 가지 주제로 확장해 나가는 훈련이 더 깊은 글을 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단서, 넓고 깊은 확장 속의 사유. 그것의 매끈한 연결. 그것이 아름다운 입체감을 만들어 매력적인 글이 되지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이미 써 둔 글감에서 확장하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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