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빡센 정면승부

그렇게 용감한 아줌마가 된다

by 우즈

"오늘 당근이가

내 형광펜 갖고 가서

자기 연습장에 막 색칠해서

못 쓰게 됐어."


친구한테 화가 났는데

그 앞에서 말 못하고

집에 와서 쉭쉭거린다.



"그랬구나

그래서 네 마음은 어땠어."


"속상했어."


"그런데 네가 네 감정을 말하지 않으면

그 친구는 네가 어떤 기분인지 몰라.


다음번엔 그렇게 하는 거 싫다고

말해보는 건 어때."



아이는 거울이다.

끊임없이 나를 비춘다.

아이에게 못마땅한 면,

싫으면 싫다고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말하는 표현이 부족해서 걱정될 때,

그건 결국 내가 풀지 못한 숙제였다.

나도 어색하고 두려워서 잘 못하는 일을

애한테는 해보라고 떠미는 듯해서

솔직하게 터놓고 말한다.



"사실, 엄마도 그게 좀 힘들었어.

그렇게 말해서 친구가 싫어하면 어쩌지 싶어서

탁 터놓고 말하기 어렵더라고.

엄마도 그럴 때가 있어.

그래도 우리 같이 연습해보자."



오은영 박사님 덕분에

아이 감정을 받아주는 말을

상황에 맞게 연출하면서,

내 마음까지 돌보는 기술이 많이 늘었다.


아이로 인해, 엄마는

스스로가 못마땅하게 살아온 부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며 성찰한다.


내가 여지껏 살아보고

안 좋았던 걸 아는 부분이라면,

내 아이는 이런 면을

똑같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못마땅한 내 알을 깨보려 애쓴다.





그림책 <메두사 엄마>에

자기만의 세계를 열고,

눈부시게 나오는 엄마가 있다.


메두사라고 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흉측하지 않다.

긴 머리를 따뜻한 색감으로

장난스럽게 표현해서

캐릭터가 사랑스럽다.




출처 메두사 엄마, 키티 크라우더




메두사가 엄마가 됐다.

메두사 엄마가 출산하는 그림이

몇 페이지 이어 나오는데

작가가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까 싶다.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엄마는

이 그림을 넘기면서

자신의 출산 기억을

더듬어보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그중에도 내가 첫 임신을 했을 때,

카풀을 함께 하던 어른이 했던 말이 생각나

잠깐 멈췄다.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정신없으니

지금 부모 공부,

그러니까 진짜 책 보고 밑줄 그으며,

부모가 어떤 건지 공부를 하라 하셨다.


자신이 돌아보니 그게 정말 필요했다 하시면서.

아, 그래야겠어요.

해놓고 돌아서서 잊었다.


그 당시 나는 부모됨에 앞서,

임신한 기간 동안 하루하루

뱃속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생명체가 신기해서,

그 생명체가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매일 새로운 일들의 연속이었으므로.


비교적 순조로운 출산을 한 뒤,

뒷마무리를 하며 옆에 서 있는 간호사에게

바로 한다는 말이

'둘째는 더 쉽겠죠' 였으니.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폭풍을

하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기 엄마였다.





메두사 엄마도 첫 아이라 서툴다.




출처 메두사 엄마, 키티 크라우더




메두사 엄마의 서툰 육아는

오로지 나만이

너를 키울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아이를 자기 품으로만 감쌌다.

내가 너에게 세상 모든 것을

가르칠 수 있다며 감싼다.


헌신,

내 모든 걸 바쳐서

아이에게 쏟아부어야 한다는

모성 유전자가 한몫하는 것이 아닐까.



뿌리에게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 아, 나의 사랑을 /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 나를 뚫고 오르렴. /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 가려무나

-나희덕, '뿌리에게' 시의 일부입니다



'막 갈구어진 연한 흙'과 같은 내게서

'숨결 처음 대이던'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날의 환희에 '즐거움에 떨며'

보내던 날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조그맣고 소중한 생명체가

숨은 제대로 쉴까

어디가 아픈건 아닌가

매 순간 노심초사하며,

그래, 아가야 '나를 뚫고 오르렴'

'내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 가려무나' 그렇게만 자라준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모성의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엄마의 품 안으로만

가두려는 것이 문제였다.


메두사의 귀여운 아이는

커가면서 사회에 관심, 학교에 관심,

엄마 말고 딴 것에 관심이 많다.


창 밖을 내다보며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궁금해 지켜보고,

엄마, 저 학교에 가면 안 돼요

라고 세상에 대한 노크가 계속된다.


그때까지 메두사 엄마는

기괴한 긴 머리칼을 하고서,

마을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는데,


아이가 학교로 나가려면

메두사의 긴 머리로는 나설 수가 없다.

사람들이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변해야 하는 순간이 왔는데도

그러질 못한다.




출처 메두사 엄마, 키티 크라우더




무엇이 엄마를 변하게 할까.

나의 어떤 부분이 못마땅해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잘 안되어 이제껏 못 그랬던 일을,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느 날 갑자기 하게된다.


아줌마는 용감하다는 말은

눈물 나는 말이다.

거기에 헌신과 사랑이 있다.

무엇이 엄마를 만드냐고 애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아이를 향한 사랑이다.

사랑은 옳은 길을 가게 한다.


메두사의 짧은 머리칼은

스스로 껍질을 벗고 성장한 엄마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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