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국어 전공입니다만

by 우즈

아이의 초등 입학이 두 달 남았다.

아직도 한글을 못 읽는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터득하겠거니 했다.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니까. 근데 입학이 코 앞에 왔는데도 아직도 읽어달라고 할 뿐, 글자에 관심이 없다. 그림만 본다. 국어 전공자로서 체면이 안 섰다.




노력을 했다.

한글 떼기에 관한 정보를 찾는다. 주머니에 늘 포스트잇, 펜을 들고 다니면서 놀이터든 엘리베이터든 아이가 관심 가질 때마다 바로바로 적어서 보여주래서 해 봤다. 아이는 관심도 없는데 혼자 앞서서 적고 온 데 다 붙였더니, 집이 엉망이 됐다.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들이댄다. 우리 동화책에서 ‘가’ 글자 찾아볼까. 차에 타고 이동하는 길에 간판을 가리키며 ‘고기’를 읽어 준다. 한글이 야호를 틀어준다. 문어 한 마리가 나와 글자를 하나씩 바꾼다. 이 한글 프로그램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내 눈에는 보이는데 너는 왜 안 보니. 한글 책을 사고 또 사고, 사서 나만 본다. 받침이 없는 동화. 나는 이제 그 내용은 외운다.




왜 안될까.

그렇지. 나는 국어를 전공했다. 원리를 설명해보자. 이건 훈민정음이란다.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글자로 백성들을 위해 아주 쉽게 만들어진 소리란다. 근데 엄마는 이걸 너에게 설명하기가 왜 이리 어렵니.

기역은 혀뿌리소리니까 그-극. 못 알아들으니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다. 소리도 원리에 따라 내준다. 기괴한 소리를 들은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이상해 하지 마.




내가 무능력한가.

아이 친구 엄마들은 말한다. 엄마가 국어 잘해서 애 한글은 걱정 없겠다고. 정작 나는 한글 어떻게 뗐어요.라고 누구보다 간절하게 묻고 싶다. 말을 삼키고, 속으로 외친다. 너 어디 가서 엄마가 국어 잘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됐다.

그냥 책이나 읽어주자.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사교육 학원을 다녀야 하나 고민할 즈음이었다. 한글에 대한 강요를 하지 말고 그냥 실컷 읽어 주자 다짐했다.



그래도 간혹 읽어 주면서,

“곰이야 곰.”

“엄마, 그냥 읽어줘.”

“응.”

그렇게 나는 글자를 읽고 아이는 그림만 봤다.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시옷과 지읒을 잘 구별하지 못한 채로. ‘수영’인지 ‘주영’인지 헷갈려했다. 입학을 하고 친구들은 자기보다 더 안다는 사실이 자극이 됐으려나.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에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할 때 즈음이었다. 받아쓰기 점수를 보니 괜찮다. 너 이제는 한글을 아는구나. 그래, 이제라도 평생 사용할 언어를 습득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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