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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순간의 미묘한 차이
꼴등 일기
딸아, 최악의 시나리오는 걱정 인형에게 맡겨두렴
by
우즈
Dec 17. 2022
딸에게
영어 시험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지.
한 달 동안 스트레스로 긴장하는 모습이 엄마에게도 느껴졌어.
평소 같으
면 학원 끝나고,
다 끝났다 이러면서 후련해했을 텐데,
요즘 며칠은 학원을 다녀와서
표정이 개운하지 않아 보이더라고.
막상 네가 시험을 위한 공부를 안 하긴 했지만 말이야.
시간이 빨리 흘러서
기대하는 안정된 점수를 받아
마음을 놓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하니까 답답했을 거고.
엄마도 어릴 때,
걱정이 많은 아이였어.
온갖 걱정을 붙들어 매서 상상 일기를 펼쳤단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로 대본을 짜 보는 거지.
'최악의 상상 일기 쓰기 공모전'이 있었으면 상 받고도 남았을 거야.
엄마가 그렸던 최악의 일기를 소개하자면,
바로 꼴등 일기, 외톨이 일기, 소심이 일기였어.
이런 식이야.
아, 내가 이렇게 단어를 안 외웠으니까, 선생님이 낸 단어 중에 반에 반도 못
맞힐 거야. 그럼 내가 꼴등이고 친구들이 나보고 꼴등이라고 비웃겠지. 그 순간 나는 비참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선생님도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을 텐데, 나를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공부 안 했다고 엄마가 숙제
도 더 늘리면 아 진짜 최악이야.
이렇게 쓰는 일기가 도움이 되었냐고. 아니.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는 건
내가 상상한, 안 좋은 느낌이 떠나지 않아서
더 불안해지더라고.
그럴 땐, 엄마처럼 걱정 시나리오를 쓰지 말고
학교에서 만들어 온 걱정 인형 있지.
걱정 인형을 따뜻하게 껴안고 가보렴.
잘 때 이러고 자는 거야.
침대에서 잘 때, 걱정 인형을 꼭 안으면서,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네가 알아서 써 봐, 이건 네 몫이야.
걱정 인형이 할 일이야라고 따로 떼 주는 거지.
그런데 명심할 것은
그전에 네가 할 일은 해 놓고
뒷 일을 걱정 인형에게 시켜야 하는 게 포인트야.
예를 들면
이렇게 말이야.
일단
눈앞에 벌어진 일을 수습해.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는
거지.
그건 단어 외우고 공부하는 거야. 하기 싫어도.
오늘 하루 그것에 집중해서 하는 거야.
그리고 결과는 걱정 인형에게 맡겨.
운명의 주사위에 맡기는 거지.
이렇게 될까 저렇게 될까
그건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걱정 인형이 할 일이란다.
그러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했다면,
나머지는 걱정 인형이 뒷마무리를 하게 두고,
넌 편히 자고 일어나면 돼.
다음 날 어떤 결과든 나와 있을 거고,
그때 또 눈앞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면 된단다.
결과를 아는 것도 재미없잖아.
생각해봐.
윷놀이를 하는데
정해진
경로대로만 말을 옮겨야 한다면
무슨 재미야.
얼마 전에 축구도 그랬잖아.
이길 것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게다가 후반전까지 지고 있던 상황에서,
추가시간을 3분도 안 남겼을 때
들어가는 기적 같은 골을 우린 봤잖아.
그게 인생이란다. 알 수 없어야 제 맛이지.
딸아,
삶에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려.
기쁨과 슬픔이지.
매번 기쁘기만 하다고 생각해봐. 어유 지겨워.
슬픔이 있어야 기쁨도 제 맛을 알아.
인사이드 아웃처럼.
슬픔 이가 빠지면 안 돼.
그러니 오늘도 할 일을 하고
나머지는 주사위를 던져서,
기쁨이 나타날지, 슬픔 이가 나타날지 두고 보자고.
김영진 <걱정이 너무 많아> 걱정 괴물이 나무에 매달린 모습
김영진 작가 아저씨의
'걱정이 너무 많아' 책 기억나지.
책 속 아이도 집에 들어가기 전에
걱정 괴물을 나무에 매달아 뒀었어.
걱정 괴물은 누구에게나 있어.
괴물을 내게서 떼어두고
좀 떨어져서 지그시 바라볼 수 있는 연습이 되면
인생의 순간순간이 한결 편해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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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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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일어나 40분 걸으며 하루를 출발해요. 영어도 좋아하는 국어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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