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동료가 냉동실에서 박스를 꺼낸다. 베이비 핑크로 예쁜 색을 낸 아기자기한 종이 상자였다. 그 속에 옹기종기 줄 서 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마카롱이 있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라 마침 적당한 입가심이 필요했던 터였다. 어제 퇴근하고 일부러 사 온 거냐는 다른 동료의 물음에 집에서 가져왔다는 대답을 한다. 이유인 즉 남편이 회사에서 마카롱 선물을 받아왔는데 자기네 부부는 이런 걸 안 좋아해서 썩히기 아까워 들고 왔다는 것이다. 예쁜 마카롱을 보고 화색이 돋는 나를 보며 그녀는 말했다. 이거 무슨 맛으로 먹어요. 허허 무슨 맛이냐고요.
마카롱을 즐겨 먹었다.
형형색색의 색깔을 보고 있으면 예쁜 문구를 볼 때처럼 마음이 혹 갔다. 쫀득한 꼬끄에 적당히 굳어있어 베어물 때 뭉근히 씹히는 크림을 함께 입안에서 버무릴 때 달콤함이란. 내게 주는 천상의 맛에 그 순간 잠시 일탈하는 기분이 들어 즐겨 먹곤 했다. 비록 하나에서 두 개 이상 먹지 못하는 느끼함을 선사할지라도.
나이 사십 넘어봐요.
이제 그런 게 안 먹혀.
나이가 나보다 서너 살 많은 선배가 한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30대 후반이었고, 이렇게 말하는 선배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사십이 되어 입맛이 바뀐다니. 선배는 원래부터 그랬던 거 아닙니까. 소식좌에 방울토마토나 파프리카를 작은 락앤락에 담아 출근하는 삶을 살잖아요.
장장 삼 년에 걸친 코로나를 끝낸 탓일까. 마흔을 넘겨가면서 '마흔'을 넘긴다는 의미를 종종 곱씹어본다. 이미 받아들이고 넘겼다 싶었으나 나이를 세는 법이 달라져 다시 서른아홉으로 돌아왔지만 삼십 대의 그 기분, 그 체력이 아니다. 달라진 입맛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마카롱보다 오이고추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몸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마트에 들어서면 가공식품 코너로 먼저 갔다. 자갈치 한 봉지, 다이제스트 하나, 콘칩 한 봉지, 아이스크림 십여 개, 삼립호떡 한 봉지, 음료수 코너의 냉장커피 까페라떼. 마트의 장바구니를 들고 쓸어 담는다. 거기에 콩나물이나 두부 조금 사는 것이 내 소비패턴이었다.
이제 달라졌다. 채소가 먹고 싶다. 마트에서 채소만 2만 원어치 사는 나를 본다. 오이고추가 한 30여 개 들어간 묶음 4500원, 상추 2500원, 오이 4500원, 방울토마토 7000원, 버섯 3000원이다. 마트에 들어서서 가공식품 쪽으로 가지 않고 채소 코너 쪽으로 방향을 훅 틀어서 그곳에서만 싱싱한 채소를 골라나오는 나를 볼 때, 내가 참 기특하고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한다. 마트 점원이 나를 보면서 '이 사람은 채소를 많이 먹는구나. 건강하구나. 대단한데'라는 인상을 가진다고 혼자 상상하면서 뿌듯해진다. 실제로 집에 와서 그런 걸 밥상에 차려서 초록색이 가득한 식탁차림을 봐도 덩달아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몸에서 젊은 기운이 빠져나가니, 프레쉬함을 음식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나이가 사십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