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다시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지 싶다. 4시에 예정된 진료자도 많으므로. 안 끌리는 방법이다. 생각을 굳혔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자. 우선순위는 당근보다 치과다. 진료는 받고 나가야겠다. 당근 판매자에게 사정을 미리 말해 양해를 구하기로 했다.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3시 32분.
아이가 치과 진료를 받으러 들어간 시간이다. 곧이어 보호자를 부르길래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별 이상 없죠. 빨리 진행해 줘요. 다급하니까요.’ 속으로만 중얼거리면서. 웬걸. 시련은 거기서 끝나는 법이 없다. 선생님의 첫마디는 예상 밖이었다.
양치 방법을 좀 바꾸셔야겠네요. 여기 보시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에게 충치가 3개나 발견됐다. '요건 몰랐지'하며 들쑤시는 통에 아주 혼이 쏙 빠진다. 오늘은 오른쪽 위에 2개 치료하고 다음 주에 왼쪽 1개를 치료하기로 하신단다. 선생님께 설명 듣는 나를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내려보는데 못 마땅했다. 문제 대충 풀어서 지적받는 학생 같다. 꼬박꼬박 검진 왔지만 졸지에 양치를 꼼꼼히 못 체크한 엄마가 된 듯해 떳떳하지 못했다. 그나마 좋은 점은 이 상황에 대해 순간적으로 든 내 과오가 떠올랐으나 자기반성까지 이어질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랄까. 아이가 양치를 대충 하는 듯했던 걸 눈치챘으면서도 수차례 눈감고 넘어간 자책을 길게 할 여력이 없었다. 어금니 중에도 영구치에 조금 충치가 생겼다는 말에 평소보다 타격감이 적었다. 왜냐하면 나는 귀로는 설명을 듣고 머릿속으로는 남은 시간을 계산했으므로 '아이고 우리 아이 평생 쓸 이를 벌써 손대서 어째.' 하며 속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말을 내뱉지 못해 답답했다.
선생님, 전 3시에 예약했는데, 지금 3시 30분이 더 넘었잖아요. 너무 기다렸다고요. 그리고 전 지금 당근 거래하러 50분까지 가야 하거든요. 좀 빨리 해주시겠어요?
워딩을 만들었지만 말 못 했다. 충치를 3개나 치료해야 한다는 선생님 앞에서 ‘급하게 가봐야 할 일이 있으니 얼른 부탁드려요.’라고 말할 순 없다. 행여나 아이의 소중한 이 치료를 급하게 서둘러하는 건 더 싫으니까.
이를 두 개나 치료해야 하므로 시간을 더 벌어야 한다. 다시 십 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안했다. 약속 시간을 자꾸 변경하는 내가 싫어서, 납작 엎드려 죄송하다는 마음을 문장으로 썼다. 더 구구절절하게. 이곳 치과 이름을 굳이 밝혀 팩트임을 강조하면서.
“저희가 지금 **치과에서 아이가 예상에 없던 충치를 치료하느라 시간이 아직 십분 정도 더 걸릴 듯해요. 정말 죄송한데 4시 즈음까지 가서 책 가지고 가고 현금 두고 오겠습니다. 여기서는 5분 정도면 갈 것 같아요. 끝나는 대로 가겠습니다. 약속 시간 못 지켜 정말 죄송해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래 후기 평가보다 내 아이 충치가 더 무서우니까 이쪽에는 철판 깔고 연신 죄송함을 어필하는 수밖에. 욕을 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꾸 시간 번복하셔서 거래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해도 감수하려 했다. 채팅창으로 계속오는 십분 딜레이, 또 십 분에 나 같아도 성질날 것 같으니까. 뾰족한 말을 한마디 들을 수 있겠다는 각오로 답장을 기다리는데, 걱정과 다른 뉘앙스의 단어들이 채팅창으로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이 아주 달았고 웃음모양 이모티콘이 나를 용서하는 듯했다. 초조한 마음에 와닿은 작은 배려의 문장은 아주 힘이 셌다. 오늘은 계속 예측이 많이 빗나간다.
수납한 시간이 3시 48분이다.
진료가 끝난 후 ‘나 울지도 않고 잘했지?’라는 아이에게 대꾸할 여유가 없어 ‘빨리 가자, 늦겠다.’하며 아이 눈 한 번 볼 여유가 없었다. 차로 이동하면서도 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느라 내가 운전할 길과 시계의 숫자밖에 안 보였다. 눈이 닫히고 귀가 닫히고 시야가 좁아지고 생각이 단순해졌다. 내 초조함의 시간 안에서는 따스함이 배어 나올 수 없었다. 결국 3시 55분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라는 대화로 거래가 완료됐다. 빠듯한 시간에 불안을 많이 느끼는 나는 그동안 너무 쪼그라들었다. 한 시간의 쪼그라듦을 원상복구 하는 데에 비슷한 시간을 들인 폭식이 이어졌다. 집에 돌아와 매운 라면을 한 그릇 끓여 먹고 모히또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차가운 커피를 내렸다. 다음 당근은 우아한 거래가 되려나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