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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28. 2023

득과 실을 따지느라 노심초사한다면

되새김질

카페에 앉아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후 집으로 돌아온 저녁이면 오늘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소 되새김질 하듯 곱씹어 본다. 내가 했던 말이 두둥실 날아다니고 그녀가 했던 말이 가슴에 콕 박힌다. 내가 어렵게 얻었던 꿀팁을 그렇게 쉽게 말해버렸다니, 아까 너무 신이 났었어, 말을 좀 더 아꼈어야 했는데. 그런데 그녀는 뭐야. 내게 그렇게 말할거였으면 그 앞에 질문은 대체 왜 한거야, 다음부터는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겠다. 나는 뒤끝이 참 많다.


내가 준 정보에 비해,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얻었던가. 습관적으로 득과 실을 견주어본다. 얻은 것에 비해, 내가 더 많이 퍼 준 것 같은 느낌이 오면, 왜 그랬을까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내가 알려준 그 대단한 팁이 아까워 죽을 맛이다. 내가 어렵게 깨달은 것을 그리 쉽게 내 주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하다. 뭔가 빼앗긴 것은 없는지 노심초사한다. 결국 그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진다. 왜 그녀는 내게서 이리 뭔가를 빼앗는 것인가. 그녀는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사람을 간보며 여우같이 굴었던 그녀에게서 염증을 느끼며 마음 속은 분노로 가득찬다. 그날 밤, 다음날 아침, 그리고 간간히 이어지는 짧은 낮 시간 동안 곰곰이 되짚어보면서 잘근잘근 그 시간을 씹어본다.



잃은 게 없는지 노심초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뺏기기 싫은 마음, 내 것을 지켜야한다는 마음, 그녀가 더 승승장구하는 것이 싫은 마음, 그녀에 대한 질투, 내 것을 얻어가려는 그녀에게 실상은 내 모습이 투영되었으므로 나도 그려려는 내 모습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서 그런 걸 읽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가진 것을 다 줘버리면, 그러면 질 것 같은 불안함.



지긋지긋하다. 카페만 갔다오면 느껴지는 비교와 질투. 나를 갉아먹는 그 시간들이 아까웠다. 그만해야 했다. 그 행동을 그만할 수 있었던 방법은 역시나 글쓰기였다.



글을 쓰고 달라진 점 중의 하나는 더 이상 카페에서 쓸데없이 사람을 만나 시간을 허비하거나, 만났다하더라도 상대는 관심없는 내 얘기를 주절주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소에 나를 마주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글로 풀어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그 표출을 통해서 나의 깊은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이미 내 안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미제 사건이 남아있지 않다. 깔끔하다. 그래서 타인을 만나면 여유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심지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글로 쓰고 싶어서 더 관심을 갖고 듣는다. 이 대화로써 나는 어떤 나의 욕망과 만날 수 있을까 기대되기까지 한다. 이 마음의 평온함을 어찌 안 누릴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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