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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29. 2023

그녀의 자존감

적당한 시련을 밟아가기

"저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 쉽게 상처받아요."
첫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짧은 시간에 그녀가 자신에 대해서 내뱉은 첫 마디였다. 자기에 대해 설명하는 첫 단어 선택이 '자존감이 낮다'라니. 속으로 저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었다. 드러내서 좋을 점이 별로 기대되지 않는 면모이기에.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자존감' 그 단어와 함께 각인됐다.


그녀와 같이 대화를 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그녀의 자존감'에 대한 말이 떠나질 않았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가령 A와 B사이를 교묘하게 이간질한다던지, 일을 남모르게 다 해두고도 아무것도 못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때도 말이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녀는 사차원이라는 말이 돌았고, 그녀가 바로 앞에 있는 자리에서도 그녀의 사소한 실수 앞에서 역시 사차원이라며 짓궂은 농담을 교묘하게 하는 이들이 늘어갔다.


그러면서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이를 봤다. 그 사람은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세다고. 심리학적인 용어로 맞는 표현인지, 적절하게 쓰인 말인지 알 수 없으나, 느낌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렸다. 스스로 형성된 자아에 대한 인식이, 자기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부족해서 그녀 스스로를 아주 낮게 평가하고는 있지만, 누가 그녀를 건드리는 것은, 그러니까 타인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려는 것은 절대로 용납 못해 화를 낸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기 탓보다는 남 탓을 자주 하는데, 그것이 그녀의 피해 의식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그 비난의 화살을 쉽게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이 사람은 피해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녀는 자존감이 낮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심리상담사가 자존감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봤다. 자존감은 높다, 낮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탄탄하게 안정적으로 쌓아나가는 것이고, 적당한 시련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 엄마는 오빠와 내게 왕자병, 공주병이 있다고 했다. 자기가 잘난 줄 안다는 것이다. 집이 넉넉하지 못해서 사는 집이며 입고 다니는 옷이 허름해 왕자, 공주병 같은 느낌이 겉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우린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마음이 충만했었고 그 어느 것에도 기가 눌리지 않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마흔이 거의 되어 어릴 적 그 일을 생각해 보면 우리 부모님이 물려주신 최대의 선물이라고 여겨진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자존감이 참 '높았'다고 여겼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적당한 시련에서 답을 찾아다. 어린 시절 '시련 배틀'에서 그 어떤 누구를 만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보다 힘들게 어렵게 산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반 친구들 중에서 나보다 힘들게 사는 친구는 없다고 스스로 여길 정도였다. 있어도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어떤 모임을 가더라도 나는 확신했다. 어린 시절 나보다 힘겹게 보낸 이는 없을 것이라고. 에피소드를 한 두 개만 말해도 거기 있는 모두를 끄덕이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만큼 시련이 많았는데, 그 모든 것을 단계 없이 무자비하게 밟아왔던 덕분이었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최은영의 소설 문장처럼, 내 마음속 장기를 꺼내 볼 수 있다면, 누군가가 내 마음을 꺼내서 꼼꼼히 살펴본 후에 당신의 자존감은 어떤 상태라고 말해주는 걸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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