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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Sep 02. 2023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 줄 몰랐네

관찰

나를 스쳐간 사람,  사건,  풍경들을 매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나갔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완성하며 인내심을 갖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인생을 두 번 사는 느낌을 갖는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한  얻어맞은 뒤, 기록하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어 다시 소화시키면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한다. 공부를 제대로 한 학생처럼, 세상을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뭔가 더 알아낸 것 같은 뿌듯함에 무서울 게 없어지고 나만의 삶의 중심이 잡힌다. 궁금한 게 생기면 타인에게 묻지 않고, 내게 물어 해결하는 습관이 생긴 것은 내 인생의 혁명이라 볼 수 있다.  


나는 무엇이든 자세히 보는 편이었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나 누군가 말하는 것을 지긋이 보고 있는 편이라 간혹 맞은 편에 앉은 상대방이 부담스러워 할 때도 있었다. 예민한 기질에 사소한 것에도 반응을 하는 편이라 같은 상황에서도 비교적 많은 정보를 본의 아니게 캐치한다. 피곤하다. 이것이 타고난 나의 기질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가 최근에 글쓰기를 하고서야 확실하게 깨달았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도 나의 이런 능력을 캐치해주지 못했는데, 그건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떠들어대는 스타일이 아니었때문일 것이다.

어라. 하던 순간들은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지간해선 개인적인 의견강력하게 드러내않았는데, 동료 중에서도 마음이 잘 맞고 의지가 되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단둘이 있을 때 나의 생각을 조곤조곤 말하곤 했다. 그간 봐 온 우리 조직의 개개인에 대해서 이 사람은 맡은 업무가 이런데 경력을 따져볼 때 이런 고민이 있을 듯하고, 저 사람은 역량이 많고 성격까지 받쳐주므로 저런 상황에서 그러한 대처가 가능했던 것 같다는 식으로 내가 주절주절 말하니, 동료가 놀랐다. 그렇게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나도 놀랐다. 그 정도 파악은 당연한 거 아닌가. 그 동료는 내게 '다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무기'라고 표현했다. 내가 정말 표현하지 않는구나에서 놀랐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정말 모른다고 생각하는구나에서 놀랐고, 그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 과연 내게 득일까 생각하게 하는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었다.

어쨌거나 조직에 있으면 사람을 유심히 관찰했다. 성별 나이, 직장에서의 위치, 직장에서 그 사람이 타인과 갖는 사적인 관계와 친밀도는 물론이고, 그 사람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삶의 루틴, 가치관까지 궁금한 것이 많아 구체적인 질문을 잘했고, 작은 단서에서도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추측하는 탐정과 같은 예리함을 갖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머리의 회로 방식이 남들도 다 그런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 재능을 발견해서 기뻤다. 역시 글을 써야 하는 기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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