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 때 잘 나가는 여대생이었고, 대학 졸업 후 들어가기 어렵다는 직장에 3차 면접까지 끝내고 입사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전업 주부가 된 케이스다.
아이가 생기면서 완벽한 집밥으로 아이를 먹이며, 집 공부도 허투루 하지 않는 내공 만렙의 초등 6학년, 3학년 아이의 엄마다.
지금은 아이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지만, 5년만 더 기다렸다가 내 할 일을 찾아 나설 거라는 꿈이 있는 엄마.
그녀의 인생 가치관을 꼽자면 '성장'이 빠지지 않는다. 영어, 독서, 운동, 요리, 청소 못 하는 것도 없을뿐더러 안 하는 게 없다. 엑셀 파일로 가계부도 쓰는 여자니까.
주중 일과 중 빠지지 않는 일은 도서관에 가는 일이다. 가족 통합 등록이 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책을 빌리면서, 나를 위한 책도 5권 챙긴다. 믹스, 2023 트렌드코리아, 세계의 엘리트는 왜 이슈를 말하는가, 월든, 델라웨어 부인. 흡족하다.
빌리면서 이런 교양 도서를 미리 알고 빌리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이미 빌리는 행위만으로도 난 교양인이 된 것 같다.
뿌듯한 순간은 사진으로 남겨야 하므로, 집에 와서 깨끗한 테이블에 올려두고 인스타에 남길 사진을 찍는다. 책만 나오기보다 옆에 있는 차분한 컬러의 조화를 곁들여서 책은 의도치 않게 앵글에 잡혔다는 듯이 슬쩍 찍는 게 감각적이다.
사진을 업로드하니 배가 고프다. 오전부터 도서관 다녀오느라 여태 먹은 것이 커피 한 잔뿐이라 일단 떡볶이를 시켜먹고 책을 보자 생각하는데돌아서니, 어라 벌써 아이들 하교 시간이다.
복잡다단한 그들의 재잘거림과 요구들이 덮쳐져 내 일상이라고 할 것 없는 오후와 저녁이 흐른다. 침대에 누우며, 빌려온 책의 표지도 못 봤다는 생각에, 내일은 커피를 마시면서 목차부터 보도록 마음속으로 1순위로 읽을 책을 찜해둔다.
다시 아침이 오고 아이들이 가고 텅 빈 집에서 책을 읽어볼까 하고 앉으니, 카톡이 울린다. 예정에 없던 줌 강의 소식을 본다. 무려 정여울 작가의 글쓰기 방법 무료 비대면 줌 강의. 이건 또 들어야지 싶어서 열일을 제치고 듣는다.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듣는데 메모할 것이 많다. 작가가 언급하는 책의 정보가 켜켜이 쌓여서 넘친다. 그 책들도 욕심이 난다. 이미 빌려 온 책을 읽지도 않았으나, 안 빌린 그 책들이 벌써 너무나 궁금해서 도서관 검색창에 대출 가능 여부를 살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목록만 보면 현대 교양 지식인이 따로 없다. 문제는 대출만 했을 뿐, 제대로 읽고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