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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Dec 20. 2022

그녀의 책은 켜켜이 쌓이고

오롯이 앉아 책만 읽기에 너무나 바쁜 당신



그녀는 한 때 잘 나가는 여대생이었고, 대학 졸업 후 들어가기 어렵다는 직장에 3차 면접까지 끝내고 입사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전업 주부가 된 케이스다.


아이가 생기면서 완벽한 집밥으로 아이를 먹이며, 집 공부도 허투루 하지 않는 내공 만렙의 초등 6학년, 3학년 아이의 엄마다.


지금은 아이들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지만, 5년만 더 기다렸다가 내 할 일을 찾아 나설 거라는 꿈이 있는 엄마.


그녀의 인생 가치관을 꼽자면 '성장'이 빠지지 않는다. 영어, 독서, 운동, 요리, 청소 못 하는 것도 없을뿐더러 안 하는 게 없다. 엑셀 파일로 가계부도 쓰는 여자니까.




주중 일과 중 빠지지 않는 일은 도서관에 가는 일이다. 가족 통합 등록이 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책을 빌리면서, 나를 위한 책도 5권 챙긴다. 믹스, 2023 트렌드코리아, 세계의 엘리트는 왜 이슈를 말하는가, 월든, 델라웨어 부인. 흡족하다.



빌리면서 이런 교양 도서를 미리 알고 빌리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이미 빌리는 행위만으로도 난 교양인이 된 것 같다.


뿌듯한 순간은 사진으로 남겨야 하므로, 집에 와서 깨끗한 테이블에 올려두고 인스타에 남길 사진을 찍는다. 책만 나오기보다 옆에 있는 차분한 컬러의 조화를 곁들여서 책은 의도치 않게 앵글에 잡혔다는 듯이 슬쩍 찍는 게 감각적이다.


사진을 업로드하니 배가 고프다. 오전부터 도서관 다녀오느라 여태 먹은 것이 커피 한 잔뿐이라  일단 떡볶이를 시켜먹고 책을 보자 생각하는데 돌아서니, 어라 벌써 아이들 하교 시간이다.


복잡다단한 그들의 재잘거림과 요구들이 덮쳐져 내 일상이라고 할 것 없는 오후와 저녁이 흐른다. 침대에 누우며, 빌려온 책의 표지도 못 봤다는 생각에, 내일은 커피를 마시면서 목차부터 보도록 마음속으로 1순위로 읽을 책을 찜해둔다.




다시 아침이 오고 아이들이 가고 텅 빈 집에서 책을 읽어볼까 하고 앉으니, 카톡이 울린다. 예정에 없던 줌 강의 소식을 본다. 무려 정여울 작가의 글쓰기 방법 무료 비대면 줌 강의. 이건 또 들어야지 싶어서 열일을 제치고 듣는다. 두 시간 동안 강의를 듣는데 메모할 것이 많다. 작가가 언급하는 책의 정보가 켜켜이 쌓여서 넘친다. 그 책들도 욕심이 난다. 이미 빌려 온 책을 읽지도 않았으나, 안 빌린 그 책들이 벌써 너무나 궁금해서 도서관 검색창에 대출 가능 여부를 살핀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목록만 보면 현대 교양 지식인이 따로 없다. 문제는 대출만 했을 뿐, 제대로 읽고 소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욕심을 줄여서 한 권만 정해서 뜯어보고 씹어봐야 한다는 걸 똑똑한 이 여자도 안다.


여행도 얼마나 더 많이 가보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깊이 닿아보았느냐의 문제 아니던가.


그런데 왜 안될까.




오롯이 앉아

책만 읽으면 된다는 걸 알지만

지 않았던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는


정작

읽는 시늉만 하는 모습

거기까지만

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친구 그녀 + 이름만 아는 그녀 + 내 속의 그녀

=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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