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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Dec 23. 2022

82년생 김지영 × 83년생 김엄마

그녀들의 이야기



오늘의 색깔은 소리 없이 겨울을 닮아 있었다.

커피를 마시려고 종종 가는 공간을 찾았다. 모든 것이 힘차게 움직이는 듯했다. 계산대 너머로 바리스타들이 씩씩하게 유리잔을 씻거나 믹서기를 닦고 있고, 젖은 손을 검은 앞치마에 닦았다.


누군가는 들어오며 재킷을 벗어 한 손에 들고 있고,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여자의 모습,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메뉴판을 두리번거리는 사람이 보인다.


분주한 1층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2층으로 계단을 오르면 텅 빈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이 이곳 특유의 바이브를 내고 있다.


구릿빛의 의자와 무채색의 소파가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빈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4차선 도로 바닥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고, 공기는 적당히 차가워서 버티칼을 활짝 올려진 채로 마주하는 큰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고 있다.       



밤새 눈이 쌓인 차에 코트를 입은 여자가 다급하게 차 문을 열면서 엉덩이를 쑥 넣는다. 나이는 내 또래로 보였고, 가방끈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은은한 색조의 짙은 갈색 머리는 대충 뒤로 넘겨 핀으로 고정해 놓았고, 몸 전체를 감싸는 오버 핏의 베이지 코트를 입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르게 다급한 느낌이 드는 것은 정체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내 커리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요조의 산문을 읽는다.

동네 책방을 운영하면서 느껴지는 어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하는 문장이다.



나는 매번 돈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상대 쪽에서는 언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역시, 장사가 잘 안 되시죠. 요즘 다들 책을 안 읽으니까요... 하고 진심으로 이해해 준다. 분위기가 허락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서 한다.
맞아요. 장사가 늘 잘 안 되지요. 그게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더 힘든 건 다른 데에서 와요. (중략) 장사를 할수록 제가 이상해지더라고요. 분명히 호젓하고 여유로운 책방이 되기를 바랐으면서, 정말로 손님이 너무 드문드문 오니까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지고요. 혹시 책이 너무 안 팔리는 건 내 큐레이팅에 문제가 있어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내가 들여오고 싶은 책보다도 잘 팔리는 책에 기웃거리게 되고요. (중략) 돈에 연연하지 않고 살기 위해 마련한 공간 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돈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너무 웃기죠. 1순위가 돈이 아닌 삶을 위해 필요한 1순위가 돈이라는 게.      



그 문장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의 일부가 지금 되살아났다.    



워킹맘이냐 전업맘이냐를 고민할 때, 가치관을 떠올렸다. 내가 중요시하는 ‘성장’와 ‘가족’이란 키워드를 같이 갈 수 없다면, 하나만 선택하라면 무엇인가. 답이 내려지지 않았던 질문에 covid 바이러스가 한 몫 했다. 코로나 초창기에 위협적으로 그것이 나를 내몰 때, 본능적으로 지킬 것은 가족이라고 절감하던 순간이 있었다. 일단 가족이 바로 서야 한다고 대원칙을 세웠고 깔끔히 정리했다.


그런데 저자와 같은 고민이 든 것이다. ‘성장’에 연연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살기로 마련한 삶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위해서라면 점점 더 ‘성장’에 연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출근 때가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주차장에서 시동을 켜며 라디오를 듣는 것도, 출근해서 의자에 앉으며 숨찬 인사와 함께 컴퓨터 전원을 켜는 것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에너제틱한 분위기도 그리웠다. 끝까지 가보지 않은 삶에 묘하게 향수를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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