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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May 14. 2024

이것봐, 싹이 났어


요즘 같이 꽃집 앞에서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을까. 온 세상이 초록초록으로 날 유혹한다. 5월이 되면, 나도 저 화분 몇 개 가져다가 잘 키울 수 있을 것만 같은 희한한 자신감이 깃드는데, 화창한 날씨로 인한 엔돌핀이 한 몫 하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는 법. 기분이 한껏 좋을 때는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은 저지르는 게 아니다. 대책없이 키우다가 관리가 소홀해 버려진 식물이 여럿 아닌던가. 배번 다시는 안 키우겠다라는 작정으로 아깝게 버린 화분도 서너 개는 된다.



허나 '교육'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 또 못참지.

이번에는 '관찰'이라는 명분이 나를 움직였다. 아이가 키워보고 싶댔다. 강낭콩을 말이다. 학교에서 조별로 키웠는데, 자기 조 강낭콩만 싹을 틔우지 않아, 선생님이 다른 씨앗을 다시 심었다고 전하며, 강낭콩을 꼭 키워보고 싶다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연신 담아대며, 강낭콩에 빠져있는 아이 모습을 이주일 째 지켜보고는, 다이소에 가서 강낭콩, 방울토마토 씨앗심기 세트를 냉큼 가져왔더랬다.   






"메루, 메루 놀라운 일이야. 싹이 났어."


일주일 째 아무 변화 없던 마른 흙에, 변화가 생겼다. 아쉽게도 이른 아침 거실의 버티컬을 올리다가 내가 먼저 발견하고 말았다. 깨어나는 아침에 너무 큰 목소리를 내면 짜증이 나는 나라서, 아이도 그럴 것 같아 큰 소리는 절대 내지 않고, 감정이 격앙되어 있을 수록 더 기분을 가라앉히며, 목소리 톤을 다운시켜 아이 방에 들어가 속삭였다. 아침 7시 이전에는 집안의 어떤 소리도 크게 들리는 법이니까.



(눈은 뜨지 못했지만, 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뭔데 그래."


궁금함을 꼬리에 매달고 바로 일어나, 거실에 있는 화분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베란다 앞에 있는 화분까지 가서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싹이 올라온 그 작은 줄기를 눈을 채 뜨지도 않은 채, 어루만진다. 소중한 인형에다가 자기만의 속삭임을 전하듯, 뭐라고 중얼거리는 듯하다. 이제 막 싹이 난 자신이 키운 강낭콩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겠지. 귀여운 것에 귀여움이 추가된 아름다운 장면이다.




백원 짜리 동전만큼 뭉쳐진, 흙 무더기를 밀어올리고 올라온 줄기가 힘이 셌다. 생명의 힘은 경이롭다는 말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허나, 일상은 경이롭지만은 않은 법. 그러거나 말거나 내 오전은 생명보다 죽음에 가까웠다. 자기 파멸의 시작은 모래알 하나보다도 커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하루를 집어삼킨다는 치버의 일기 구절처럼 작은 생각하나가 떡잎처럼 내 마음 속에서 고개를 들기 작했던 것이다. 그림책 윌리를 보는 듯하다.




한 점의 구름은 처음에는 조금, 신경쓰이다가, 이내 온 세상을 뒤덮고 만다. '윌리의 구름 한 조각'



아침에 문득 든, 기억의 실오라기 하나가 확장되고 증폭될 때가 있다. 보통은 질투심에서 시작되어 두려움으로 끝맺곤 하는 직장동료에 대한 기억이다. 한 번 그런 기억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루 전체가 짜증으로 뒤덮여 망치게 되는 순간들이 자주 있었다.

언제 다음 주먹이 날아올지 몰라 두려워하는 삶이랄까. 언제 또 내 머릿속에서 그런 기억을 떠올려, 또 망치게 될 지 불안한.





아침 한 두시간에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대부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 중에서 '새싹 하나'에 집중해 생명력을 만끽할 것인지, '과거 기억'에 매달려 자기 파멸로 이끌어 갈 것인지는 '선택'에 달렸다.


무의식적이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을 터.

일단 긍정 회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여겨진다. 아침에 그럼에도 나를 긍정할 수 있도록, 만족스러운 루틴으로 아침을 열고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면 그 어떤 소란스러운 기억이 찾아와도 덮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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