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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Aug 15. 2023

직장맘이 전업맘이 되었을 때

첫 한달



“애 초등 입학이라서요.”


휴직을 고민했다. 동료가 묻는다. 어쩌기로 했냐고. 진짜 쉬기 싫은데. 그래야 할 것 같다고. 어젯밤 펑펑 울었다고 말하는데 동시에 마스크 위로 다시 또르륵 눈물이 쏟아졌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럼 들어갔다가 육 개월만 있다 다시 나와요.”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 한 번 잡힌 발목은 빼기 어려웠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직장맘에서 전업맘으로




함께 일하던 동료는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 개월 만에 바로 복직해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너무 서두르는데’라는 내 마음의 소리는, 그녀도 나처럼 가족에게 발목 잡히길 바라는 내 질투였다. 멀티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는 ONE! 돈보다는 가족이었다. 그리고 가족 이전에 나였다. 모든 시간이 아이에게만 집중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누군가 ‘구멍 난 밤’이라고 표현했던가. 밤의 구멍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믿어보려고 야심 차게 마음먹었던 나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업무 포털이

없다


‘언제까지 뭐 해주세요.’라는 요구가 없다. 기안 올릴 일도 없다. 하루, 한 달, 개월.. 시간이 통으로 주어진다. 가장 쉽게 빠져드는 함정은 영상이다. 덫이다. 이렇게 재미난 걸 느긋하게 다 보느라 잠도 오지 않는다. 그만 봐야지 하고 누워 눈을 아도 잠시 뿐이다. 방금 본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8가지 방법’이 궁금해, 조금만 더 볼까 싶어 깜깜한 방에서 핸드폰을 켠다. 얼굴 가까이 댄, 핸드폰 불빛이 눈부시다. 늦은 새벽 잠깐 잠이 들었는데 아침이라 알람이 울린다. 아이 등교 준비에 요구되는 시간은 최소 이십 분이다. 딱 맞춰 일어나 최적의 동선으로 밥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배웅한다. 애가 갔고 남편은 그보다 더 일찍 나갔다. 그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부장님이

없다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더구나 오늘 날씨 얘기, 전날 과하게 먹은 식사 얘기, 꼭 해야 할 말을 아니지만, 으레 인사치레로 하는 말들을 안 듣고 안 해도 돼서 좋다. 사회적 미소를 지어야 할 일이 없다. 가족 없이 혼자 있는 집.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숨만 쉬고 있어도 좋다. 지금 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유를 만끽했다.      








피와 넷플릭스


배민으로 오전에 일찍 여는 곳 찾아 메뉴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추어 열한 시에 시킬 예정이다. 다음은 넷플릭스다.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를 찾아 봤던 영화를 또 보는 재미가 있다. 보다 보면 어느새 아이 하교 시간이다. 자유 끝. ‘아이 돌보기’가 주 업무라 이때부터 본업이 시작된다. 아이에게 웃으며 반응하고 애정 어린 질문을 하고 생활습관을 함께 잡아가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준다. 나를 위한 것은 음식밖에 없던 하루가 지난다. 내일은 뭔가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야지 다짐하지만 뭘 할까. 공허한 마음을 달래는 영상을 찾아 다시 패턴을 반복했다. 그런 하루가 켜켜이 쌓였다.

직장맘에서 전업맘으로 바뀌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에 몸이 익숙해질 무렵, 전업맘으로서의 로드맵을 그려볼 여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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