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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즈 Jul 12. 2023

그녀가 글을 쓰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조언

그녀를 동네에서 보면 반갑다. 뭘 물어봐야겠다는 작정 같은 건 없다. 그저 어디 가냐는 식으로 물으면 상대가 주절주절 하는데 궁금해서 듣는다기 보다는 ', 너와 얼굴을 맞대고 뭔가 소통하고 있잖아. 그걸로 됐어.'라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스치짧게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와서 보, 별 거 안 했는데 우리는 이어졌다고 느끼게 하는, 나를 안도하게 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지나치다 잠시 마주치게 되어서 그럼 30분 정도만 차 한 잔 하자고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됐다.


그녀의 집 거실은 자연스럽다. 매번 날 것 그대로의 집을 마주한다. 약속을 해서 가기보다는 불시에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평소 스타일이 털털하다. 집에 오는 사람을 의식해서 굳이 정리란 것을 하지 않는다. 먹다 남은 커피 잔, 아이들이 보다가 만 책, 화장실 앞에 있는 빨래가 비죽 튀어나온 빨래 통, 싱크대 안에 있는 오늘 아침 먹은 설거지 거리들, 늘 가스불 위에 올려진 뭔가 찌거나 끓이고 있는 냄비들이 눈에 담긴다.


그녀의 집에서 내가 유일하게 앉는 곳은 부엌 식탁 테이블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뭔가가 항상 놓여 있다. 유치원 다니는 어린아이의 알림장이나 그녀의 다이어리 같은 수첩, 볼펜이 끼워진 채로. 일정이 적혀있는 달력 너머로 어제오늘 샀을 법한 식빵도 보인다. 식탁 테이블의 의자에도 애들 가방 2개쯤은 걸려있고 애들이 그리다가 만 흰 종이도 의자에 걸친 채로 놓여 있다.


여기는 여전하네요

라며 앉은 내게 그녀는 항상 내온다.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는 기본이다. 삶은 달걀과 삶은 감자를 으깬 볼에 당근 오이를 넣고 마요네즈와 함께 버무려서 모닝빵 사이에 넣는 그걸 뭐라고 하더라. 여하튼 거기에 머스터드 홀그레인을 넣으면 맛이 한 층 깊다며 먹어보라고 내준다. 이런 걸 오늘 만들었냐며 부지런하다는 칭찬과 함께 나는 넙죽 받아먹는다. 얻어먹는 건 다 맛있다. 작정하고 뭘 줄 때는 냉동실에 있는 갑오징어를 송송 썰어서 초장과 함께 주기도 한다. 그녀의 가스레인지 위해서 삶고 있는 땅콩과 등갈비 류의 음식 삶는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는 식탁 테이블에서 짧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녀의 부엌은 그런 곳이다.  


이번은 얻어먹기만 하는 내가 미안해서 뭘 챙겨갔다. 약간의 어질러진 식탁 테이블 위로 내가 챙겨 온 빵과 간식을 꺼내 올려두었다. 그런데 내가 이 부엌에서 주로 보던 것과 다른 성질의 물건을 봤다. 눈이 번쩍 떠진다. 맞은편으로 내가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았던 눈에 익숙한 블루투스 키보드가 보였다. 에세이 책도 한 권 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너무나 궁금하다.


사연은 이랬다.

그녀는 올해부터 그림책 읽기 모임을 한 달에 두 번 하고 있었다. 그건 알고 있던 사실이다. 모임 구성원이 6명 정도인데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만 했더니 뭔가 짜임새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간단한 키워드를 정해서 글을 써보자고 했다고 한다. 분량은 정하지 않고 키워드와 관련한 주제로 자유롭게 쓴 글을 밴드에 올려 공유하이걸나중에는 작은 책으로 엮을 거라고 했다.


브런치에 글을 30편쯤 쓴 에세이 장인이 가만있을 수 없다. 조언이 줄줄 흘러나왔다. 에피소드를 쓰세요. 자세할수록 좋아요. 제목은 이미 출간된 책 제목을 서치 해보고 매력적으로 써봐요. 고쳐쓰기가 제일 중요해요. 첫날 쓴 것은 쓰레기예요. 한 줄 쓴 것에 더 자세한 이야기를 덧붙여봐요. 내 머릿속에만 있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다른 에피소드를 찾아봐요. 영화나  같은 거요. 상대가 묻지도 않았는데 신나게 떠들었다. 꼰대다. 요즘 같은 영상 시대에 글 쓰는 사람을 만나면, 길 가다가 오천 원짜리 지폐를 발견하고 '저게 진짜 돈 맞나' 하고 굳이 가까이 가서 다시 확인할 때처럼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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