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 인테리어에 디퓨저가 빠질 수 있나

그녀의 신혼 욕망

by 우즈


27살이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그녀의 나이다. 공기업에 취직했고 거기서 사내 연애를 하다 취직한 지 3개월 만에 아이가 먼저 생겨 급하게 결혼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명절에 그녀의 시댁에서 형제끼리 돈을 균등하게 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남편이 그의 부모에게 자신은 이 집의 막내인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말하는 걸 봤단다. 그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고. 어른이 되었으면 똑같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건데 어린아이같이 구는 남편의 태도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내용이야 어찌 됐든 '어른이면'이라는 단어와 '책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그녀에게 조용히 놀랐다.


그녀의 신혼집에 갔던 기억이 난다. 막 결혼한 신혼부부 특유의 인테리어였는데 새댁은 막달이라 배가 많이 나와있었다. 모던한 느낌의 카펫이 깔려있었고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작고 앙증맞은 테이블이 눈에 띄었다. 은은하게 거실을 밝히는 길이가 긴 조명이 소파 옆으로 자리 잡아 테이블 위의 디퓨저와 조화롭게 어울려서 한눈에 봐도 예뻐 보였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에 칭찬을 거듭하는 나에게 그녀가 손님 접대용 과일에서 체리를 집어 먹으면서 하는 말이 마음에 쓰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해보고 살아요." 가구를 살 때마다 주변 어른들이 이제 아이 태어나면 이런 거 못쓴다 저런 걸로 하라고 훈수를 둔 모양이다. 결혼 전에 처음 봤을 때도 나이답지 않게 속이 깊은 아가씨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긍정적이고 에너제틱한 분위기가 돋보여서 지금 이 상황도 본인답게 잘 꾸려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신혼에 대한 작은 욕망을 본 순간 애처로웠다. 엄마가 되어 가는 과정을 알기에 더 안쓰러웠다. 그래 누려요. 지금이라도 마음껏 하고 싶은 거 다 해봐요. 누려요. 누가 뭐라 그래. 힘을 덧붙여주고 싶었다.


감자꽃을 따다


주말농장 밭고랑에 서 있던 형이 감자꽃을 딴다
철문형, 꽃 이쁜데 왜 따우
내 묻는 말에
이놈아 사람이나 감자나 너무 오래 꽃을 피우면
알이 튼실하지 앉은 법이여
꽃에 신경 쓰느라 감자알이 굵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평소에 사형으로 모시는 형의 말씀을 따라 나도 감자꽃을 딴다
꽃 핀 마음 뚜욱 뚝 끊어 낸다
꽃시절 한창일 나이에 일찍 어미가 된 내 어머니도
눈 질끈 감고 아까운 꽃 다 꺾어 냈으리라
조카애가 생기고 나선 누이도
화장품값 옷값을 말없이 줄여갔으리라
토실토실 잘 익은 딸애를 등에 업고
형이 감자꽃을 딴다
딸이 생기고 나선 그 좋은 담배도 끊고
술도 잘 마시질 않는다는 독종
꽃 핀 마음 뚜욱 뚝 분지르며
한 소쿠리 알감자 품에 안을 날들을 기다린다

-손택수


신혼 생활 한 달 후 아이가 태어났고 집안은 무지개색 물건으로 도배되었다. 그녀의 신혼에 대한 꽃 핀 마음은 잠시였고 알감자를 위해 접어둬야 했을 심정이 지금 생각해도 짠하다.


이 시에는 그녀도 있지만 나도 있다. 그녀뿐만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알감자를 위해 희생하는 꽃 핀 마음 써내려 보라면 백가지도 더 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애가 셋이다. 애들 잘 키우고 일도 잘한다. 문득 테이블에 앉아 내가 절제했던 욕망과 추구했던 목표가 무엇인지 노트에 써 내려가 보는데, 아이가 좀 크고 나니 '꽃 핀 마음 다 끊어내면, 알감자가 상할 수도 있다'는 문장으로다시 적어보는 여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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