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닭심 (분당구 판교역로192번길 22 판교 효성 해링턴타워 110호)
맛집의 기준이 <수요미식회> 출연 여부이던 때가 있었다. 신동엽과 황교익이 다녀가지 않으면 맛집이라고 할 수 없던 시절 말이다. 그때는 나도 황교익 아저씨처럼 되고 싶었다. 그리고 <수요미식회>가 선정한 식당을 맛집 이라고 생각했다. 밥 한 그릇도 역사와 인문학의 의미를 담아 먹는 황교익이 고른 식당인데 당연히 맛있을 거라 생각했다. 식당이 맛있어야 하는 건 기본이고 그 외에 여러 이야기거리가 있어야 맛집이라고 느껴진 것이다. 근데 시간이 흐르고 막상 내가 30살 아저씨가 되고 나니 그냥 김준현 같은 사람이 더 되고 싶다. 밥 한 그릇을 먹어도 보는 사람까지 기준 좋아지게 만드는 사람 말이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음식을 음식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이 더 되고 싶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고 싶다. 세상 일에 많은 의미를 두며 사는 것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황교익 아저씨 같은 사람이 되려면 정말 부지런 해야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한다. 게으르고 공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렇게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직장을 다녀보니 역시 세상 일은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최고다. 굳이 찾지 않아도 늘 어렵고 생각해야할 것 투성인 세상이다. 먹을 때 만큼 만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만 먹고 싶다. ‘한 입만’ 크게 외치며 입이 찢어지도록 숟가락을 넣는 김준현 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은 비록 변했지만 <수요미식회>가 선정한 맛집은 여전히 신뢰하는 편이다. 방송에서 맛있다고 극찬했던 모든 집은 아니지만 그 식당들 중 몇몇 곳을 방문해보고 그 왜 그렇게 사람들이 극찬 했는지 어느정도 인정하기로 했다. 보라매역에 있는 ‘서일순대국’이나 연남동에 있는 ‘서대문 양꼬치’가 그 반증이다. <수요미식회>가 선정한 식당은 적어도 맛 없을 확률이 낮다. 어쨌든 고심해서 골랐을 테니까. 그 고심을 나 대신 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감정도 어느정도는 있다. 그래서 내게는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판교에도 <수요미식회>가 선정한 맛집이 있다. 바로 ‘일편닭심’이라는 닭 요리를 파는 곳이다. 이곳은 내가 판교로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곳이기도 하다. <수요미식회>의 맛집을 신뢰한 후 부터 새로운 지역을 가게 되면 그곳에 <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한 맛집이 있는지 먼저 찾아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렇게 ‘일편닭심’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기들과의 첫 회식을 그곳에서 치른 후부터 나는 ‘일편닭심’에 일편단심이 되었다. 한 조각의 닭 꼬치가 내 마음에 꽂혀버린 순간이었다.
‘일편닭심’은 닭 꼬치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된 곳이다. 하지만 나만의 시그니쳐 메뉴는 따로있다. 이곳에서 닭 값으로 100만원 정도는 족히 썼다고 볼 수 있는 내가 내돈 내산으로 체득한 메뉴다. 동기들 사이에선 이미 ‘이종혁 세트’로 명명된 그 숨겨진 조합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은 기쁨이니 나눌수록 배가 된다. 부디 다들 널리 나눠서 일편닭심이 더 잘 됐으며 좋겠다. 물론 뒷 광고는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종혁 세트’는 깐풍기 치킨과 바지락 해물 라면이다. 하지만 이건 두 명 기준이고 만약 세 명이라면 이 세트에 닭 껍데기 튀김을, 네 명이라면 닭꼬치 한 마리까지 추가한다. 물론 나는 둘이 가도 이 메뉴들을 다 먹지만. 어쨌든 ‘이종혁 세트’를 주문할때면 같이 간 사람들이 늘 의문을 제기한다. 닭 요리 집이니 깐풍기는 이해가 되도 굳이 이 곳에서 해물 라면을 먹어야 하냐는 것이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라면을 시켜먹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그 집은 라면을 먹기 전 과 후로 나뉜다. 라면을 먹은 후론 그 라면이 아니면 그 집을 가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전엔 그 식당이 단지 닭 요리를 잘한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곳이 그냥 음식 자체를 잘하는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만류해도 절대로 빼먹어서는 안되는 메뉴가 라면이다. 그 맛을 보기 전엔 나도 라면이 직원들만 먹는 스텝밀인 줄 알았다. 아마도 그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그렇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창 다른 곳에서 1차를 거하게 치르고 간단하게 맥주로 마무리 할겸 일편닭심을 찾았었다. 깐풍기라는 메뉴를 그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맛있긴 해도 2차 메뉴로 먹기엔 살짝 부담스러운 감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메뉴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고 손님도 많이 없었기에 직원들이 홀에 나와 식사를 하려던 것 같았다. 다년간의 식당 알바 경험으로 직원들이 먹는 음식이 그 식당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곳 직원들은 무얼 먹을까? 곁눈질로 슬쩍 훔쳐보니 새빨간 라면을 커다란 냄비에 끓여 나오고 있었다. 김이 뿜어져 나오는 라면 국물의 색은 어느정도 취기에 오른 사람이라면 응당 환장하지 않으면 고소를 당할 정도로 맑고 고왔다. 주변을 둘러보고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것을 확인 한 후 직원들에게 물었다. 국물이라도 한 모금 얻어 먹어 보리라는 심산이었다.
“혹시 그 라면 여기서 파는 건가요? 냄새가 너무 좋아서요”
“네! 이거 저희 가게 메뉴에요. 바지락 해물 라면. 하나 해드릴까요?”
“아니요 두 개 해주세요”
그렇게 바지락 해물 라면은 내 마음으로 와 ‘이종혁 세트’가 되었다.
사실 조금은 생뚱맞긴 하다. 닭 꼬치를 주 메뉴로 하는 닭 요리 전문점에 바지락 해물 라면이라는 메뉴가 끼어있는 것이 말이다. 뿐만 아니다. 들깨 만두 수제비, 고추장 돼지찌개 등 이걸 왜 여기서 팔지? 하는 의문이 절로 생기는 메뉴가 많다. 근데 중요한 건 다 맛있다는 점이다. 닭 요리가 아닌 메뉴가 이상하리 만큼 다 맛있다. 아마 사장님이 원래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본인이 즐겨 먹던 음식들을 메뉴로 낸 것은 아닐까 그런 추측을 해본다.
일편닭심의 시작은 닭 꼬치 푸드 트럭이었다. 분당 내에서는 꽤 소문이 자자한 닭 꼬치 푸드 트럭이었다고 한다. 너무 맛이 있어서 사람들이 줄 서 먹는 맛집이 되었고 결국 판교에 정식 가게로 정착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게의 스토리를 알고 나니 앞선 나의 추측이 어느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푸드 트럭에서는 다양한 요리를 하는 것이 어려우니 그동안 참아왔던 요리 욕구를 정착한 이 일편닭심에서 푸는 것이다.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인 주 메뉴를 중심으로 두고 그것 외에도 잘 할 수 있는 메뉴를 사이드로 두는 것. 손님들의 입장에선 여러 음식을 즐기니 좋고 맛있으니 더 좋지 않을까?
다시 ‘이종혁 세트’로 돌아오자. 그 세트 메뉴의 유일한 단점은 다음날 화장실에서 고생을 좀 해야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깐풍기 치킨도 맵고 해물 라면도 맵다. 적당히 매운게 아니라 좀 많이 맵다. 그래서 어느정도 각오가 필요한 메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과 직장 상사의 눈치는 그것보다 더 맵다. 그래서 유난히 업무 스트레스가 많은 날이면 그 매운 음식이 당긴다. 매운 인생 살이를 매운 음식으로 상계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여지없이 동기에게 톡을 보낸다. ‘오늘 이종혁 세트 고’ 그럼 바로 답장이 온다. ‘ㅇㅋ’
회사 동기와 이곳을 가기로 약속한 날은 둘에게 공통점이 있는 날이다. 바로 스트레스 게이지가 80% 정도 찬 날 이라는 것.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종혁 세트’를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해선 스트레스 게이지가 100%를 넘어 120%가 되도록 채워져야 한다. 직장생활은 가만히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걸로는 120%까지 채울 수 없다. 120% 는 스트레스를 표출하지 않고 가슴 속에 겹겹이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금의 육두문자라도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된다. 흡연을 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담배를 피워서도 안된다. 바람을 쐬러 나가도 안된다. 이런 행동들은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풀게 만드니까. 어떠한 작은 풀림도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래야 120%가 채워진다.
내가 고등학생 때 문학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그 분은 수업시간 중 누군가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하면 절대 보내주지 않았다. 그 당시 학풍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 정도로 엄격하고 어떤 점에서는 비상식적으로 느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그 선생님이 엄격하거나 비상식적인 분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수업 시간 끝날 때까지 참고 화장실을 가라. 그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카타르시스(catharsis) 다”
선생님은 문학에서 종종 나오는 그 개념을 학생들에게 직접 ‘체험’ 시켜 주셨다.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 선생님의 철학은 그 속담 그 자체였다. 나도 그 카타르시스를 몇 번 느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아주 정확하게 깨달았다. 현장 체험형 교육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 교육법을 믿는다. 내가 성공 사례다.
스트레스를 모으는 행위도 이와 같다. 정말 마려운 소변을 참고 또 참아 끝내 분출했을 때의 카타르시스는 아직도 내게 생경하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스트레스를 모으고 모아 한번에 풀어내어 결국엔 카타르시스에 이르는 방법을 배웠다. 그 방법론에 있어 일편닭심의 맵디 매운 두 메뉴와 소맥은 늘 디폴트 값이다. 그리고 종일 참았던 육두문자를 신나게 내뱉으며 직장 상사 뒷담화를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고등학생 시절의 나로 되돌아간다. 카타르시스다. 현장 체험형 교육법이 실제 상황에 적용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내가 그 성공 사례다.
일편닭심은 내게 많은 의미를 가진 식당이다. 내가 판교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곳이고 내 허기와 스테레스를 책임지고 풀어주는 곳이며 내가 가장 많이 가는 식당이자 술집이다. 식당들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생각한다. 그 아이덴티티을 단지 메뉴로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그렇듯 식당도 다양한 모습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점에서 일편닭심의 전략 아닌 전략은 젊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 한 것이다. 그래서 일편닭심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다양한 아이덴티티로 불려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편닭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