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부대찌개 판교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역로 230)
한국인에게 빨간 맛이라는 건 무슨 의미 일까. 2017년 여름을 강타했던 레드벨벳의 히트곡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사랑해요 레드 벨벳. 좋아해요 레드 벨벳. 이렇게 레드 벨벳 이야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아쉽게도 내가 말하려는 빨간 맛은 한국인의 밥상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빨간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특히 고춧가루를 송송 뿌려 얼큰하게 끓여낸 빨간 국물의 이야기. 우리는 왜 한국의 필수 음식으로 얼큰한 빨간 국물을 선택했을까. 빠-빨간 맛 궁금해 허니.
빨간 국물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다. 빨간 국물계의 클래식이라 불리는 김치찌개를 시작으로 닭도리탕, 이름부터 직관적인 매운탕, 육개장 까지. 어쩌면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하얀 한국 음식을 골라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빨간 국물을 좋아한다. 물론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좋아한다. 예부터 빨간 국물이란 한국인들이 매운 맛을 즐기며 지켜온 민족의 고유한 자부심 일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의 맛 부심이랄까. 빨간 국물이 모두 매운 것은 아니지만 국물이 빨갛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얼큰함이 배가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부터 백의민족의 가슴 한켠엔 무엇보다 뜨겁고 빨간 붉은 심장이 켜켜히 박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빨간 국물을 선택한다. 이건 붉은 심장의 준엄한 명령이다.
수 많은 빨간 국물 중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음식은 부대찌개다. 칼칼한 국물 위에 선홍빛 햄과 소시지가 낭낭하게 넘치는 그 음식. 부대찌개는 많은 빨간 국물과의 싸움에서 당당히 왕좌를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부대찌개가 한국인의 빨간 국물 중 최고라 하면 의문을 가질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우선 부대찌개가 한국의 전통 음식이냐라는 물음에서부터 막힌다. 부대찌개는 미군 부대의 잉여 군수 물자로부터 시작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빨간 국물이라고? 물론 아니다. 하지만 단언하기엔 아직 이르다. 들어가는 재료나 그 시작이 한국이 아니라고 해서 한국 음식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듯 부대찌개에는 미국의 대표 가공식품인 햄과 소시지가 가득 들어있다. 그리고 한국 전통 음식이라고 하기엔 그 역사상 유래가 비교적 짧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한국스러운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까지 온 서구의 가공 식품을 한국식으로 끓여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춧가루까지 팍팍 넣어 새빨간 국물로 말이다. 아마도 부대찌개를 처음 만든 사람은 그 재료가 무엇이든지 항상 빨갛게 만들어야 한다는 가슴 속 붉은 심장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 것 일까. 조선시대부터 계승되어 전해온 음식만이 한국전통 음식이 아니다. 옛 선조들의 정신을 계승해 새로 창조해낸 음식도 한국 전통 음식이다. 그렇기에 부대찌개는 붉은 심장으로 끓여낸 민족의 음식이다.
이 민족의 음식을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한국인 이라면 응당 빨간 국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특히 부대찌개는 더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짭짤하고 자극적인 소세지와 햄으로 부터 우려난 국물을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가공 식품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인위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맛을 왜 좋아하냐고.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삶을 즐기기 위해 하는 일들 중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사람들은 즐거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조금 과장하면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몸과 수명을 내어주는 것이다. 단지 나이를 먹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세상 모든 일에는 등가 교환의 법칙이 적용 된다.
담배 한 모금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한 잔의 술로 세상의 고통을 잊는 것. 자극적인 튀김, 구이같은 음식이나 몸에 해로운 각종 가공 식품을 먹어가며 그 순간을 즐기는 것 모두 같은 이치다. 즐거운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록 이런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망들은 더 커진다. 누구는 그런 욕망들을 쾌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쾌락이라고 말하면 뭔가 거창하고 나쁜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쾌락은 곧 삶의 즐거움 그 자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물론 법과 사회가 약속한 그 범위 내에서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누구보다 삶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위법은 저질러 본 적이 없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즐거움은 보통 먹고 마시는 것 뿐이다. 그리고 부대찌개가 그 즐거움을 극대화 시켜준다 것에 십분 동의한다. 다이나믹 듀오가 발표했던 <맵고짜고단거> 라는 트랙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린 음식도 부대찌개였다. 빨갛기 때문에 맵고, 햄과 소세지 때문에 짜고, 듬뿍 들어간 마늘 향 덕에 달다. 부대찌개는 자극적인 음식의 표본이고 그 말인 즉 슨 즐거움을 주는 대표적인 음식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이 그것이 민족의 음식이라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부대찌개를 먹으면 즐겁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일이 고되게 느껴질 수록 더 생각난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점심에도 부대찌개는 스테디셀러 메뉴다. 직장인이야 말로 세상살이가 고된 사람들이니까. 남의 돈을 버는 건 언제나 어렵다.
힘들게 일하는 직장인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점심시간이다. 너무나도 짧은 그 한 시간이 직장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의 시간이다. 그렇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메뉴 선택에 실패하기를 두려워 한다. 유일한 그 시간에 메뉴까지 실패하면 얼마나 슬플까. 그래서 사람들은 부대찌개를 선택하는 것이다. 맛있고, 즐겁고, 맵고, 짜고, 달고 얼마나 좋은가. 부대찌개만한 점심메뉴도 없다. 특히 직장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부대찌개는 한국의 민족 음식을 넘어 직장인들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직장인들과 부대찌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판교에도 직장인들이 자주 가는 부대찌개 집이 있다. ‘이태리 부대찌개 판교점’. 고된 세상살이는 판교 직장인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이곳도 점심 때마다 삶의 낙을 찾으려는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다. 이곳이 직장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꼭 부대찌개를 판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보다 직장들은 계산적이고 영악하다. 그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생각보다 꽤 까다로운 몇 가지 조건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들의 점심을 점령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이곳은 가격이 저렴하다. 왠만한 부대찌개 집은 거의 저렴하다. 근데 이곳은 특히 더 저렴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이곳은 라면과 밥이 무한 리필이거든. 제 아무리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월급 쟁이다. 매일 먹어야 하는 점심을 큰 돈 들여 해결하기에는 월급 쟁이의 월급은 항상 부족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거나, 좀 더 싼 구내 식당을 이용해 끼니를 해결한다. 하지만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단지 식사 시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아주 신성한 것이다. 업무 시간 중 유일한 낙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며 그 낙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담배를 태우지 않는 사람에겐 점심 시간이 유일하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결국 점심시간이 유일한 낙이다. 내 주위에 담배 태우는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담배는 그저 일시적인 도피일 뿐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단지 끼니를 때우는 시간이 아니다. 이른 오전부터 힘든 회의로 지친 뇌를 달래는 유일한 위로이자 어젯밤 늦게까지 달렸던 회식으로 상한 몸을 풀어줄 피로제이고 오후에 있을 중요한 피티를 꼭 성공시켜줄 심신 안정제다. 이렇게 신성한 의식을 단지 도시락이나 매일 먹는 구내식당의 메뉴로 해결한다고? 말도 안되지. 이때 필요한게 바로 부대찌개다. 점심으로 먹기에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고 피로를 풀어주며 안정감까지 느끼게 하는데 만원이 넘지 않는 음식. 우리가 그걸 부대찌개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태리 부대찌개 판교점은 밥과 라면 사리가 무한리필이다. 다른건 다 참아도 무한리필은 절대 못참지. 가격이 저렴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이고 배가 터지도록 탄수화물을 먹을 수 있는 것 이다. 또 이곳은 다른 부대찌개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햄들이 많다. 미국제 햄 뿐만 아니라 유럽제 햄까지 가득하다. 그렇기에 너도 나도 부대찌개가 내리는 빨간 은혜를 누리기위해 피같은 점심 시간을 투자한다. 하지만 부대찌개는 빨간 은혜와 더불어 걷잡을 수 없는 칼로리 폭탄도 함께 내린다. 그렇다고 굴복할 내가 아니다. 그동안 이 뱃살을 어떻게 만들었는데, 나는 성인 남성 권장 칼로리를 비웃으며 가벼이 부대찌개에 소시지 사리를 추가한다. 가공식품의 향이 깊어 질수록 내 점심이 완벽해짐을 느낀다. 내 수명과 맞바꾸는 맛은 늘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난 늘 이태리 부대찌개 판교점으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늘 안정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 식당에 가면 내가 기대하는 그 맛이 항상 느껴진다. 식당이 늘 같은 맛을 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이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늘 보고 있다. 정확하게 항상 같은 맛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태리 부대찌개 판교점은 항상 같은 양의 햄과 동일한 육수와 정량의 양념이 한데 어우러져 한 그릇의 부대찌개를 끓여낸다. 그렇게 끓여진 깊은 자극의 맛은 직장인의 소울푸드로 명명되기에 충분한 맛이다. 더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 할까? 부대찌개는 사랑 받지 않으면 안되는 음식이다.
부대찌개의 맛 같은 안정감 있는 인생을 떠올린다. 이태리 부대찌개 판교점처럼 정량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참을수 없는 자극을 생각한다. 내 인생도 정량의 조합만이 모여 그 자극을 만들어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근무량도 슬픔도 기쁨도 늘 정량으로만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정량들이 깊은 자극의 월급을 만들어낸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늘 비정량적이고 덜 자극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기에 항상 부대찌개를 향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역시 부대찌개를 먹으러 간다. 비정량의 인생에서 정량의 인생으로 한걸음 또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