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왕이다

판교에서 1,428끼 - 목탄장

by 조식

손님이 왕이다. 돈이라는 사회의 약속된 가치가 세상을 지배한 후로 우리는 늘 저 말에 대해 배워왔다. 제공되는 재화나 서비스에 알맞는 가치를 지불하는 사람은 언제나 누구라도 왕같은 섬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쁘게 생각하면 결국 돈이 모든 정당성을 부여 받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점에선 누구나 돈이 있으면 그 만큼의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남녀노소 직업 불문 정치 성향 불문 사상 불문. 이점은 돈이 가진 유일한 민주주의적 면모다. 난 그점이 좋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를 맛과 서비스로 이뤄내는 식당들이 좋다.


판교에는 유독 훌륭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식당들이 많다. 그만큼의 가치를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 네이버 부동산에 판교역을 검색해보니 가장 싼 아파트 매매가가 18억이다. 내 눈이 이상한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여전히 18억이다. 이런 18억. 판교에 주민이 있긴 있는 걸까. 난 아직까지 판교 주민을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판교로 출퇴근 한다는 이유로 그들과 같은 서비스 환경을 제공 받는다는 건 그나마 위안 받을 일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씩 무리를 한다. 18억짜리 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판교의 서비스를 가랑이를 찢어가며 제공 받는다. 민주 시민으로서의 사명이랄까, 난 공산주의가 싫다.


내가 아는 판교 최고의 민주주의 식당은 ‘목탄장’이다. 가게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 모든 음식을 목탄으로 조리해 내놓는다. 하지만 단지 무언가를 불이 아닌 것으로 구워만 내는 곳 만은 아니다. 무국적 요리주점이라는 슬로건이 그 곳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나타낸다. 여러 나라의 특징과 맥락을섞어 목탄으로 완성한 퓨전요리 전문점 인 것이다. 내게는 이 가게의 특성 조차도 민주주의적이라고 느껴졌다. 한 접시 위에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놓인다는 것. 인종 국정 구분없이 모두가 목탄 위에 나란해 진다.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그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인 것은 맞다. 옛날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목탄장은 민주주의가 절반인 식당이 맞다.


식당의 민주주의적 면모를 채우는 나머지 반은 훌륭한 서비스다. 목탄장은 서비스만을 위해 존재하는 식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은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바만 마련되어 있는데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아서 요리를 제공해주는 곳과 요리를 먹는 공간이 맞닿아 있다. 바로 앞에서 음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다른 초밥 전문점들과 별로 다를 것은 없다. 하지만 이곳은 특별하게 앞서 말한 목탄의 화구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내가 먹을 음식이 어떻게 구워지는지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즐거움과 더불어 손님으로 하여금 안전감을 느끼게 한다. 식당은 손님에게 식재료의 안전성을 의무 서비스로 제공해야한다. 그점에서 목탄장의 협소한 매장 규모는 손님으로 하여금 보다 넓은 아량을 갖추도록 만드는데 손색 없다.


뿐만 아니라 목탄장은 늘 성심 성의껏 음식을 만든다. 식재료를 불에 직접 익히는 것이 아닌 불에 태운 나무의 화기로 익히는 일은 꽤나 고된 일이다. 캠핑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그 어려움을 단번에 안다. 실제로 내 눈 앞에서 땀이 뻘뻘 나도록 목탄 앞에 서있는 주방장을 볼때마다 정말 많은 감사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정녕 섬긴다는 마음인가, 어쩌면 그들은 정말 왕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상궁의 마음으로 서비스를 다하고 있는지 모른다. 혹시 이곳의 사훈이 ‘손님이 왕이다’ 일까. 이곳에서 진정으로 내가 왕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내가 만약 왕이라면 내 이름은 아마 “이도” 일 것이다. 내가 위대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니까. 그리고 그만큼 고기를 좋아하기도 하니까.


훌륭한 서비스를 받았으니 그에 걸맞는 가치를 계산한다. 물론 비싸다. 목탄장에서 한끼는 일주일치의 순대국밥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왕 같은 대우를 받은 뒤 계산하는 돈은 아깝지 않다. 나는 서비스의 가치와 그걸 위해 지불되는 돈이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왕 같은 대우를 받았다면 왕 처럼 배포있게 계산을 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이 먹는 사회를 더욱 발전시킬 원동력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식당을 넘어선 서비스업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야 할 민주주의 정신이다. 이런 작은 의식들이 모여 우리 사회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몇몇 소식이 나를 안타깝게 한다. 대표적으로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이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건이기에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업이 내가 4년동안 다녔던 모교의 재단이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이 사건 말고도 기사를 통해 정말 너무 많은 소식을 접한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들. 그 “진상” 손님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말은 나를 아연하게 만들어 버린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고도 이런 대우를 하는 거야?”


“여기 사장 어디 있어? 사장 나오라 그래. 직원들 교육 똑바로 안 시켜?”


가령 이런 말들이다. 정확하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손님일 뿐이다. 그 식당에서, 그 사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당신은 그들에게 손님일 뿐이다. 설령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해도 1만원짜리 식사를 공짜로 내어줄 수는 없는 법이다. 대통령도 시민이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잊는다. 심지어 그들은 대통령도 왕도 아니다.


우리는 제공받는 만큼의 대가를 지불한다. 반대로 내가 지불하는 대가 만큼만 제공 받아야 한다. 이것이 서비스업의 민주주의 정신 아닐까? 내가 그 점원들에게 반말을 하거나 정해진 것 외에 이상의 것을 그들에게 요구할 권리는 그 대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카페를 하나 알고 있다. 동교동에 있는 ‘Deep Coffee’ 다. 이곳에 적혀있는 안내문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서비스업의 민주주의다. 모든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이 안내문을 따랐으면 좋겠다.

‘반말로 주문하심 반말로 주문 받음’


이 땅 위 모든 식당과 손님들이 이 민주주의 의식을 가지길 바란다. 피 땀 흘려 이뤄낸 민주주의 사회 위에 침 땀 흘리며 민주주의 식당을 이뤄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일지 생각해본다. 판교의 그 작은 식당이나 홍대에 카페 모두 그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 있는 곳들이다. 어쩌면 그것이 두 식당이 가진 사회의 큰 사명이 아닐까. 이 지면을 빌어 나도 숨죽여 흐느끼며 쓴다.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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