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들이 노는 방법
매해 9월 첫째 주 토요일은 전 세계 모든 웨스트 코스트 스윙 댄서들과 함께 같은 춤을 추는 행사가 있다. 예전에는 플래시몹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인터내셔널 랠리(International rally WCS)라고 부른다. 프랑스의 댄서인 Olivier & Virginie Massart가 주도하여 5월에 안무 영상을 올리면 모든 댄서가 연습하고 외워서 같은 날 영상을 찍는다.
랠리 영상이 5월에 올라오면 6월부터 매달 강습을 진행하며 안무를 외우게 된다. 밖에서도 출 수 있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참가하기 때문에 안무의 난도는 그리 높지 않다. 춤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어도 연습하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
평소에 춤추는 소셜 댄스와는 다르게 안무를 외워야 해서 같이 연습하는 파트너와 함께 합을 맞추면 수월하게 외울 수 있다. 고정 파트너가 없어도 연습은 할 수 있지만, 미리 정하지 않으면 당일에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당일에 함께 춤출 파트너는 미리 정하는 것이 좋다.
웨스티 코리아는 강남에 있는 커뮤니티로 랠리 장소는 강남역이 주 무대가 되었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많은 댄서가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은 강남역 사거리가 적합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길 한복판에서 춤을 춘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지만, 다수의 댄서 사이에 숨으니 한결 부담이 덜했다. 춤을 추러 가면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멈춰서 춤을 구경하며 수군거리는 장면을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대부분 사람이 관심 한 톨 주지 않고 지나쳤다. 그제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춤을 추게 됐다.
춤을 추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플래시몹이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서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 콘셉트이기에 안무도 이에 맞춰져 있다. 시작할 때 파트너의 손을 잡고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등장해서 춤을 추다가 음악이 끝나면 유유히 사라지는 것이다.
2017년에는 세계 곳곳에서 지역별 관광 명물 혹은 춤을 출만한 큰 광장 근처에서 찍은 영상을 모두 합쳤는데 무려 41개국 246개 도시에서 참가했다. 246개 도시의 영상을 합치면 영상마다 3초씩만 계산해도 12분이다. 서울처럼 한 도시에 두 개 이상의 커뮤니티가 있다면 영상도 두세 개 보냈을 테니 대충 잡아도 15분 이상의 결과물이 나온다. 실제로 편집된 영상은 18분이 넘었다.
알파벳 순서로 정렬된 도시 이름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도시에 같은 춤을 추는 댄서들이 있는지 알 수 있어 여행 계획에 참고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S로 시작하는 도시 중에는 서울도 포함되어 강남역 사거리에서 찍은 영상을 볼 수 있었다. 한국 국기와 함께 아는 사람들이 나온 걸 보니 괜히 반가웠다.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대도시부터 처음 들어본 도시의 이름까지 전 세계가 함께 한 듯했다. 이제는 영상 하나로 한 번에 볼 순 없지만 나와 같은 춤을 춘 사람들이 세계 여기저기에 있다는 사실은 영상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춤을 전 세계 사람들과 함께 추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그리고 댄스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해외에서 처음 만난 댄서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게 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은 "여행에 춤 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일부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책에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던 사진과 자료, 영상과 관련된 내용은 남겨두었습니다.
남아있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만 삭제하였지만 전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