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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애 Aug 29. 2023

한강공원으로 소풍 가서 춤추기

댄서들이 노는 방법


날이 좋은 봄가을에는 소풍이 가고 싶어 진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댄서들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는 소풍은 나가서 풍경을 보며 먹고 노는 게 끝이지만 댄서들끼리 가는 소풍은 춤이 추가된다. 


주로 날씨나 일정이 소풍 가기 적당한 6월 초에 일정을 잡곤 한다. 소풍 장소를 고를 때는 춤을 출만한 바닥이 근처에 있는지, 음악을 살짝 틀어도 괜찮은 분위기인지를 보고 소풍 준비물에 야외용 댄스화를 챙긴다. 서울에서 괜찮은 소풍 장소로는 세빛둥둥섬이 있는 한강공원이 꼽힌다. 서울의 중심부에 있어 많은 사람이 오기에 편리하고 적당히 매끄럽고 넓은 바닥도 있다. 공연보다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아이들이 뛰어노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듯했지만, 아스팔트 바닥보다 훨씬 괜찮다. 



댄서들이라고 만나자마자 손을 잡고 냅다 춤부터 추는 건 아니다. 한강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는 제법 밝은 시간이라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챙겨 온 음식과 음료를 곁들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무래도 댄서들이라 그런지 절반 이상의 대화가 춤과 관련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길을 헤매다 늦게 온 사람, 처음부터 느긋하게 온 사람 등 지각자들도 하나둘씩 합류하고, 어느 정도 인원이 모이고 나서는 배달 음식도 한껏 시켜 먹었다. 배를 두드리며 포식자가 된 사자처럼 느긋하게 돗자리에 앉아있다가 해가 떨어질 즈음 활동을 시작했다.


소화를 시키겠다며 “춤추러 가자!” “나랑 춤출 사람?”을 외치며 파트너를 한 명씩 붙잡고 무대가 있는 바닥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다들 댄스화를 신고, 큰 스피커를 끌고 가며 춤추러 나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대부분의 인원이 춤추러 가서 잔디밭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짐을 챙겨 무대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다 같이 자리를 옮기고 나니 춤추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동했는지 모두가 활발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6월 초의 선선한 바람은 춤을 추며 오른 열과 땀도 금방 식혔다. 열심히 춤을 추다가 잠깐 앉아서 쉴 때면 맥주 한 캔과 함께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한강 뒤로 반짝이는 빌딩의 불빛들이 보이니, 잔잔하게 들리는 팝송에 춤추는 사람들이 어딘가 로맨틱한 느낌이었다.


평소의 소셜 장소가 한강공원으로 바뀐 것뿐인데 차분한 강바람에 마음이 둥실 떠오르는 듯했다. 멍하니 보고 있어도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유튜브에서 한 번씩 트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의 배경으로도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영상으로 남기지 않은 게 아쉽다.




한강공원은 소풍으로 좋은 장소기도 하지만 큰 행사에도 적당한 장소라서 “위 댄스 페스티벌”이라는 큰 행사도 이곳에서 진행한 적이 있다. 위 댄스 페스티벌은 웨스트 코스트 스윙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장르의 춤 동호회들이 참가한 행사였다. 

공연과 소셜, 강습, 그리고 막춤 대회까지 5개의 무대를 만들어 두고 6개 춤의 장르로 나눴지만, 장르로 구분되지 않는 모든 춤이 행사 대상이었다. 덕분에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컸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외에 구경 온 사람들도 많아 한강공원은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나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단체로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하기 전에는 긴장감에 외우던 안무도 까먹을까 걱정하며 긴장감에 맘 편히 놀 수 없었다. 결국 무대에서는 실수도 크게 저질러서 흑역사가 생겼다는 생각에 울적했지만 끝나고 나서는 이미 다 지나갔다는 생각에 안 좋은 감정을 내려놓았다. 언제 또 한강공원에서 이렇게 좋은 바닥에서 춤을 춰보겠나 하는 생각에 소셜 댄스도 한껏 즐겼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 행사가 없었다. 코로나 초반에는 모두가 어찌할 줄 모르고 모든 활동과 모임을 중지했었다. 이때는 소셜도 없어서 혼자 집에서 우울해하며 영상만 봤고 한창 춤에 목말라했다. 그러다 야외에서는 모일 수 있다는 얘기에 소규모로 사람들을 모아서 한강에 간 적도 있었다. 열 명 내외로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밖에서 다 같이 소풍을 즐기고 춤을 추는데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놀 수 있었다. 


한 커플씩 풍경 좋은 곳에 나가 춤 영상을 찍고 오기도 하고, 치킨을 먹다가도 음악이 좋으면 춤추러 나가고, 일부러 좋아하는 곡을 틀고 춤추러 가기도 했다. 

블루투스 스피커의 음향이 크진 않아서 나중에는 스피커를 무대 한 중앙에 놔야 했는데, 그 빛나는 스피커가 예쁘다며 지나가던 아이가 스피커에 호기심을 갖고 들고 가려는 돌발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의 아빠와 함께 아이를 설득해서 스피커를 되찾았고, 이후에 그 아이는 음악이 마음에 들었는지 근처에서 아빠와 함께 춤을 췄다. 그때는 굉장히 당황했지만 돌아보면 이런 사건도 외부에서 춤을 출 때의 추억이다. 



이렇듯 한강공원은 나에게 좋은 풍경을 보며 사람들과 놀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춤도 출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 산책하기 좋은 길, 혹은 날 좋을 때 데이트하기 좋은 곳으로 기억하겠지만 나에게는 주로 춤과 관련된 기억이 있다. 

한강공원에서 소소하게 또는 다 같이 모여 춤춘 것부터 영상을 찍고, 공연을 구경하거나 공연하며 실수한 것까지 댄서들과 함께한 기억이 가득하다. 좋은 풍경을 보며 먹고 마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음악에 춤까지 더해 특별한 기억들이 생겼다. 





이 글은 "여행에 춤 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일부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책에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던 사진과 자료, 영상과 관련된 내용은 남겨두었습니다. 

남아있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만 삭제하였지만 전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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