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서들이 노는 방법
춤추는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처음에는 여행을 같이 간 친구들은 모두 여자라서 팔로잉만 할 수 있었다. 그 탓에 아름다운 풍경과 춤출만한 바닥을 두고, 구경만 하고 와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다음에 갈 때는 리딩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다음 여행에는 진짜로 리더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춤을 추는 것만이 목적인 여행은 아니었다. 여느 여행처럼 구경하고 맛있는 걸 먹고 놀지만, 특별한 순간엔 춤을 더하는 것이다. 한창 놀다가도 춤을 추고 싶은 장소나 순간에는 춤을 출 수 있는 것. 그게 댄서들의 여행이었다.
해운대 바닷가에서 야경을 보며 걷다가 해수욕장 중간에 데크가 깔린 걸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춤을 추기로 했다. 핸드폰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서 틀고는 리더와 팔로워가 나와서 한 커플씩 춤을 추고 남은 사람은 주변에서 구경하거나 영상을 찍었다.
바다에는 불빛이 없어 저녁의 바다는 가라앉을 것만 같은 어두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해운대의 야경은 마린시티의 불빛과 해운대 바로 앞 건물들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는 그보다 훨씬 어두웠지만 오징어잡이 배가 있어서 어슴푸레하게는 볼 수 있었고 파도 소리와 바닷바람 소리가 음악과 함께 들렸다. 해가 떠 있을 때보다는 어두웠지만 실루엣만 보이는 덕분인지 서 있기만 해도 멋있게 보였다. 팔로워가 한 바퀴 돌 때 살짝 걸친 얇은 가디건이 휘날리는 모습이 드레스가 둥글게 펼쳐지는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해안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춤추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바쁜 출퇴근길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다들 각자의 산책길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음악을 틀고 춤을 춰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니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 덕분에 해운대의 야경을 다양한 커플 조합으로 찍을 수 있었다. 한번 멋지게 촬영한 영상을 보니 다른 장소에서도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산까지 내려와서 야외에서 춤 영상을 남길 일은 흔치 않기에 산책 시간을 늘려서 풍경과 바닥을 함께 관찰하기 시작했다.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고, 춤 영상을 찍으면서 송정역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아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소나기 때문에 챙겨 온 우산을 들고 뮤지컬 <Singing in the rain>처럼 통통 뛰며 우산을 던지며 시작해 보기도 하고, 운행이 종료된 철길 옆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송정역 앞에서 영상을 찍을 때는 특별한 신청곡이 있었다. 친구 한 명이 <Dancing with a stranger> 음악에 춤을 추고 싶다고 했다. 음악에 맞춰 콘셉트도 잡았다. 리더와 팔로워가 처음부터 손을 잡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로 시작해서 스쳐 지나가듯 만나면서 춤을 추는 것이다. 마치 지나가다 처음 본 사람과 춤을 추듯 말이다. 카메라의 시작 지점도 지정했다. 불 켜진 송정역 간판에서 시작해서 카메라를 점점 내리면서 사람들을 찍어야 한다는 요청도 받았다. 배우의 요청에 따라 촬영했더니 스토리가 있는 뮤직비디오 한 편이 나왔다.
사람의 기억은 복합적이라고 한다. 어떤 향을 맡으면 특정한 기억이 나기도 하고 어떤 음악을 들으면 음악과 관련된 기억이 나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는 <Dancing with a stranger> 음악을 들으면 부산에서 춤추며 영상을 찍은 순간이 기억난다.
그냥 여행이었다면 사진을 찍고 끝났을 텐데,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는 걸로도 뭔가 다른 여행이 된 것 같았다. 단순한 여행 영상이 아니라 춤과 음악을 곁들여 뮤직비디오를 여러 편 찍고, 춤을 추면서 그 순간의 풍경과 분위기를 최대한 즐겼다. 여행에 춤만 더했을 뿐인데 경험도 추억도 많아졌다.
이 글은 "여행에 춤 한 스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일부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책에 모두 수록하기 어려웠던 사진과 자료, 영상과 관련된 내용은 남겨두었습니다.
남아있는 글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부만 삭제하였지만 전체 글을 읽고 싶으시다면 책은 아래 링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