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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Oct 21. 2022

솔직하게 살기

-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솔직해지자.'

젊었을 때 나의 유일한 행동지침이었다. 남들의 제안을 아무 생각없이 수용하고, 가끔은 '싫어'라고 말하고 싶은 때에도 의사표시를 하지 못해서 스스로가 싫었던 어느 날 그렇게 결심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100% 맞는 것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처방이다. 거기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에는 다수의 의견을 그냥 따라하고, 시간이 지나고 숙고를 해야 입장을 정하는 그런 성격이 더해져서 솔직해지기가 어려웠다. 힘의 논리에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래서 겉으로는 저항없이 조용히 지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건 아니지'라고 말하고 살았다.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조용한 학생이었고 회사원이었다. 그래서 솔직해지자는 행동지침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효했다.   


(에피소드 1)


1989년 대학 졸업후 대기업에 입사해 신입이었던 시절, 입사한 동기의 99%는 남자였고 사무실 책상 위에는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9시쯤 부서 여직원이 자판기 커피를 20여잔 쟁반에 담아 한 잔씩 책상 위에 놓고 갔다. 그러면 대부분의 부서원들은 책상에 앉아 담배를 물고 커피를 마셨다. 사무실에 아침마다 뭉개구름이 피웠졌다. 한 선배는 아침마다 화장실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 담배가 없어서 집에서는 볼일을 못본다는 농담을 나누었다. 


'90년대 중반 들어서 금연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고 담배를 아무 곳에서나 피우는 자유가 점차 사라졌다. 처음에는 응접실 같은 데서 피우다가 결국은 층별로 사무실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흡연실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흡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타 부서의 사람들과 만나는 교류의 공간이 되었다. 같은 일을 하는 부서원들끼리 업무를 좀 더 자유롭게 나누는 토론장이 되기도 하고, 일을 하다가 잘 안풀리면 서류를 들고와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논의하는 그런 장소가 되기도 했다. 


중화학 산업에 속하는 내가 다니던 회사는 남성중심의 회사였지만 대졸 여직원의 채용도 점점 늘어갔다. 그때 대졸 여직원 한 명이 흡연실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는 신선하고 경이로운 일이 발생했다. 타부서 여직원이지만 매우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같은 부서의 젊은 직원들 또는 선배들과 같이 와서 업무토론도 하고 스몰토크도 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몇몇 선배들은 좀 불쾌해 했다. 여직원이 어떻게 여기서 대놓고(?) 담배를 피우냐는 것이었다. 물론 여직원에게 직접한 말이 아니고 우리끼리의 대화 중에 한 말이다. 나는 '화장실에 몰래 가서 피우거나 점심시간에 밖에 나가서 몇대씩 빨고(피우고의 속어)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떤 친구는 담배를 피는 그 여직원 앞을 지나가면서 씩씩대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조금 우당탕거리기도 했다. 점차 그 여직원이 오면 흡연실에 있는 다른 직원들은 못 본척하고 대화도 안 했고 그냥 담배를 재털이에 비비고 나갔다. 그 여직원과 같이 담배를 피우러 다니던 동료들도 사라졌다. 두세달 만에 분위기가 그렇게 바꿨다. 남자들끼리 특별히 결의한 것도 없는데.


점차 그 여직원은 흡연실에서 보이지 않았다. 


흡연실은 인구밀도가 높은 시간과 거의 사람이 없는 시간이 있다. 보통 아침 출근해서 커피 한잔 뽑아들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샐러리맨의 생체리듬이다. 그래서 9시 전후에 사람이 많고 복잡복잡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난 9시 반쯤은 대부분 집중 근무모드에 돌입한다. 물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업무리듬이나 생체리듬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어느 날, 흡연실에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에 흡연실을 찾았다. 그 여직원이 담배를 혼자서 피우고 있었다. 평소에는 별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지만 그날은 둘 밖에 없었고 본지도 정말 오랫만이라 그냥 오랫만이라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은 곧 회사를 그만 둘 것이라고 했다. 회사의 분위기가 본인과 잘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세한 이유는 묻지 않았고 그 여직원이 왜 내게 굳이 사직한다는 얘기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금 서글펐고 안타까웠다. 나도 그 회사의 분위기가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바꾸지는 못했지만.


(에피소드 2)


회사를 오래다니면서 남들처럼 승진을 하게되고 부하직원들도 점차 늘어났다. 어느 덧 신입사원들이 나이가 딸의 나이에 점차 근접해 왔고, 회의가 있으면 중심에 앉게 되고 말하는 시간도 점차 늘어났다. 부하직원 일때는 상급자들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는지 의야해 했는데 조금씩 이해가 됐다. 일이 능숙해지기도 하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의사결정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부하직원에게 위양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인이 하고 싶은데로 일을 처리하면 된다. 하고 싶은데로 하면 아무리 많은 일도 힘들지 않다.


그런데 직원들이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을 할 때도 있고 기대수준을 못 맞추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경우 일머리를 잘 잡아주고 다시 시간을 주기도 하지만 역정이 나기도 한다. 특히 믿었던 직원이 기대수준 이하일 때나 일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는 더 역정을 낸다. 한번은 업무를 토의하면서 많이 지적질을 한 적이 있다. 믿었던 직원이고 나름 잘 챙겨주고 싶었고 그 직원도 잘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오버했던 모양이다.  


나중에 퇴직을 하고 그 때 지적을 받았던 부하직원이 너무 힘들어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반성을 많이 했다. 특히 나이가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과 부하직원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그들은 이미 너무 강력한 포지션을 갖고 있기 때문에. 


'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말이 있지만  '솔직함' 늘 옳은 것이 아니다.  젊을 때는 좀 더 자기 감정과 의견에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자기 의견에 대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좀 더 세련되고 강력해 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강약점을 찾고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시험해 볼 수 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솔직해지기 보다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기다려야 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지적을 해서 무얼 고치는 걸 본 적이 없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아픈 상처를 더 덧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바뀌려면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인생의 지혜를 젊은이에게 남발하는 것은 잔소리이거나 스포일러가 된다. 자기감정에 솔직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내 감정을 너무 여과 없이 표출해서 오래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가 서먹해졌다. 반성하고 후회하지만 지금도 내 감정이 바뀌지는 않았다. 단지 그걸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었던 것을 인정한다. 자기를 찾는다는 명분 아래 너무 솔직했다. 그런 건 바보스러운 짓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가치있는 일을 남들 눈치보지 않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뭉퉁해도 좋다.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과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아직도 많이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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