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한국어 교사 봉사 후기
세종사이버대학 한국어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을 해서 이번이 7학기째다. 늦깎이 공부지만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한번 발휘해 보기 위해 망설이던 세한통 봉사를 작년부터 시작했다. 세한통은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사이버대학교의 동아리다. 코로나 시절이라 세 번의 학기 동안 세 명의 학생을 주로 온라인으로 가르쳤다. 다들 내게는 좋은 학생이었고 꿈 많고 밝은 젊은이 들이었다. 그 추억을 남기고자 글을 쓴다.
처음 맡은 학생은 나이지리아에서 온 20세의 제로나라는 여학생이다. 세종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는 3학년 학생인데, 1학년은 한국에서, 2학년은 나이지리아에서, 3학년은 다시 한국에서 공부했다. 영어 트랙의 과정을 밟고 있어 학교 수업은 모두 영어로 한다고 하고, 같이 공부하는 학생도 외국인이 많다고 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그것으로 학비와 생활비 대부분을 충당한다고 한다. 한국의 교회에서도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교육 봉사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아프리카 사람들 중 가장 생활력이 강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지만 제로나가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한국에서 대학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일주일에 두 번씩 영어 유치원 보모 일을 하고, 공부도 하고, 또 친구들과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많이 바쁘게 사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수업은 오프라인으로 했다. 만나보니 줌으로 수업할 때보다 훨씬 밝고 명랑한 여학생이었다. 가족 얘기를 하면서 내가 나이지리아에 있는 아빠 나이와 같다고 하면서 넉살도 좋게 '한국 아빠'로 불러주었다. 참관한다고 수업에 같이 동행한 우리 딸한테는 바로 언니라고 하고, 둘 끼리는 인스타 친구를 그 자리에서 맺었다. 나한테는 인스타 친구 맺지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의문의 일패(?). 그날은 문법을 가르치는데 쉽지 않았다. 교재에 나와있는 예문과 다른 사례를 몇 개 꺼내 봤는데 다 실패했다. 용례가 조금 다르거나 불규칙 변형이었다. 서울 출신의 표준말을 사용하는 선생님이라고 의시대었는데 미안했다. 그래도 제로나도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서 그런지 부족한 선생님을 잘 이해해 주어 고마웠다.
두 번째 학기에 만난 학생은 우루과이에 사는 25살의 안젤리라는 학생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고 영국에 영어유학을 다녀와서 영어가 어느 정도 능통했다. 우루과이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데 K팝을 사랑하는 아티스트 지망생이다. 아티스트의 꿈을 여러 번 강조하길래 우회적으로 아티스트가 되는 길이 무척 어렵고 이제 좀 늦은 것 아니냐고 조언을 했던 것 같다. 한국의 아이돌은 10대 초반부터 선발해서 지옥 같은 훈련을 하고 20대 중반이면 벌써 원로 대접을 받는다고. 그랬더니 노래를 한번 들어보라고 하더니 줌 저편에서 노래를 했다. 레이디 가가의 노래를. 목소리도 너무 고왔고 음정도 좋고 줌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열정도 보였다. 팩트를 얘기한다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했던 것을 후회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꿈을 밀고 나아가라고 격려했다.
안젤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만 한국말보다는 영어를 더 많이 했다. 안젤리는 자기가 가진 생각을 한국말로 표현하기 힘들면 영어로 했다. 어떤 수업시간은 안젤리의 마음을 듣는 시간이 대부분인 날도 있었다. 한국어 교사로서는 제대로 못했지만 안젤리에게는 그렇게 자기 마음을 꺼내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는 듯했다. 아티스트의 꿈에 대해, 사람에 대한 편견에 대해, 남성 중심의 문화에 대해, 자기가 지향하는 음악에 대해... 우루과이 영어 악센트를 듣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많았지만 그렇게 들어주면 후련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마무리를 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가을 어느 날 갑자기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난 음력 생일을 쇤다고 하니까 음력 생일에 맞추어 다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지구 반대편에서 생일 선물을 보내주고 싶다고 주소를 알려달라는 데 겨우 달래서 선물은 보내지 않는 것으로 했다. 그리고 본인의 불안한 정체성에 대해 얘기를 했고, 수업할 때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안젤리가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번 학기에는 터키에 사는 투체라는 29살의 여학생을 맡았다. 터키에서 대학을 나왔고 한국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고 지금은 터키에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내년 8월에 한국에 있는 대학에 와서 정치학 석사 과정을 밟을 계획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앞의 두 학생과는 다르게 한국말이 아주 능숙하다. 한자어 어휘가 조금 부족하고 경음의 발음이 조금 아쉽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브런치에 나와 있는 에세이를 같이 읽고 의견을 나누었다.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솔직함에 대해서, 청년 백수 생활에 대해서 쓴 브런치 글을 읽었다. 법정의 '무소유'와 피천득의 '인연'도 같이 읽었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도 두 편이나 읽었다.
투체씨는 자기 의견이 강하지는 않다. 어떤 때는 조금 망설인다. 한국말이 서투른 면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 대안이 없으면 문제를 안고 가는 편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소극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을 같이 하면서 점점 속이 깊은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학기의 마지막 수업이었던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했다. 제로나와 안젤리도 많이 아쉬워했지만 투체씨도 많이 아쉬워하면서 혹시 계속할 수 있는지 물었다. 시차 때문에 터키 시간으로 아침 5시 30분에 수업을 하고 출근하는 일정이지만 이젠 익숙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 줌으로 만나서 하는 한국어 수업이 일주일 중에서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했다. 일주일 중 너무 기다려지는 시간이라는 말에 그동안 나의 피곤함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실 나는 일주일 중 제일 힘든 시간이었다. 조그만 사업장을 운영하지만 소장님께 대부분 맡겨 놓고 있어 일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산책과 책 읽기, 취미생활 등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내게 수업을 준비하고 실제로 수업을 하는 일은 나름 집중력을 요하는 시간이었다. 거기다가 점잖고 친절한 중년의 한국 아저씨라는 가면을 쓰고 있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새 학기에 새로운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수업을 연장하기로 했다.
세 학기 동안 세 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국적도 다르고 한국어 수준도 다르고 수업과 대화의 내용도 많이 달랐다. 그래도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꿈을 꾸고 열심히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다. 열심히 배우려는 태도를 보고 모두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어떤 일이든 부딪히고 해결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젊은이들 특유의 에너지도 느꼈다. 나의 딸아이도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이다. 내가 보기엔 아직도 나의 딸은 아직 어리고 세상을 헤쳐나가는 요령이 부족한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내가 가르쳤던 세 명의 젊은이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세한통에서 같이 봉사하는 동아리의 선생님들도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젊은이 들인데 보수도 없이 묵묵히 서로 격려하면서 봉사를 한다. 늘 응원하고 우리 젊은이들이 우리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즐기고 살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