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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인철 Jan 27. 2023

자유롭거나 권태롭거나

삶의 딜레마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


언제가 접했던 이 경구를 다시 떠올렸을 때 '삶이 안정되면 권태롭고 자유로우면 불안하다.'로 재생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자유는 욕망과 등가물일 수도 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가 염세철학자인 것은 분명하다. '욕망', '권태' 두 개의 선택지가 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하나의 선택지를 '자유'로 바꾼 내가 더 균형적인 삶의 자세를 가졌다고나 할까. '자유를 욕망'하니 결국은 쇼펜하우어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인간의 삶은 이런 딜레마 투성이 일까?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별은 서운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하기도 하다. 성취는 기쁘지만 곧바로 허전해지곤 한다. 진짜 아름다운 풍경은 쓸쓸하고도 아련하다. 새로운 시작은 늘 설레고도 긴장된다. 없으면 갖고 싶지만 갖게 되면 별 것 아니란 생각에 금방 싫증을 낸다. 권태로우면 욕망하고 욕망하면 위험하다.


무수한 삶의 이벤트에서 느껴지는 딜레마와 양가적 감정이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 감정을 정확히 읽어보고 싶었다. 내 감정은 어느 쪽인지 뚜렷해야 어떻게 행동할지가 정해지고 그래야 나 다운 삶을 살 수 있으니까. 어렸을 때 어머니의 영향이 크기도 하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같은 유치한 질문 말고도 '갖고 싶어?', '먹고 싶어?', '좋아?',  '싫어?' 같은 단순한 질문에도 명확하게 대답을 잘 안 하던 나를 어머니는 답답해하셨다. 특히 '~~ 한 것 같아요.'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것을 많이 야단치셨다. '사내가 명확하게 자기 의견을 얘기해야지' 하면서. 어느 순간 나는 빨리빨리 내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강박 같은 것을 갖게 되었다. 


작년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금메달 리스트인 최민정 선수의 인터뷰를 보고 그런 강박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몸싸움 없이 힘과 스피드로만 아웃코스로 치고 올라가 역전을 시키는 최민정 선수의 스케이팅이 너무 시원시원했고, 인터뷰도 너무 자신 있게 잘하는데 우리 어머니가 싫어하는 '~~ 한 것 같아요.'를 거의 모든 대답에서 쓰는 것이었다. '~~ 너무 좋아서 안 믿기는 것 같아요. ~~ 작년 평창올림픽 금메달 보다 더 기쁜 것 같아요. ~~ 마지막에  웃으면서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등등. '말은 애매하게 해도 된다.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이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빨리 단순화해서 결론을 내려고 애썼던 것 같다. 어떤 일이 생기면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빨리 결론을 내린다.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다른 일이 생기면 두 가지가 다 뒤죽박죽 되어 실수를 하게 되고 잘못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기한이 좀 남아 있더라고 빨리 정리하고 한쪽으로 치워 놓는 편이다. 남들이 보기엔 부지런하고 추진력이 크다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머리를 빨리 비워 놓아야 다른 사안에 대처가 용이하기 때문에 만든 삶의 방법이다. 그렇게 정리를 빨리 해 놓고 그 일의 데드라인이 가까이 왔을 때 그 일을 다시 꺼내 놓고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인다. 결론이 바뀌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상황이 더 진전되어 그때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한 경우도 있고 생각이 짧았던 경우도 있다. 시간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래도 결론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결론이 나면 빨리 실행을 했다. 회사에 다닐 때도 과제가 주어지면 빨리 끝내고 퇴근하려고 열심히 했다. 그런데 빨리 끝내면 또 다른 과제를 주어서 결국 퇴근도 못하고 일만 많이 했다. 윗사람은 좋았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사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느긋하게 문제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여러 가지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쳐다보려고 한다. 개인적인 일은 괜찮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걸려 있는 일을 신속하게 결론을 내고 추진하다가 불편했던 경험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제안을 하면 못마땅해도 따라 주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잘 될 경우는 그렇지만 잘 안 풀릴 경우는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더 좋은 의견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먼저 의견을 내면 그 일을 주도해서 하게 된다. 좋을 때도 있지만 혼자서 뒤치다꺼리까지 다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지금은 기다려보고 내가 나서야 할 자리가 될 때까지 기다리려고 애쓴다. 입이 근질근질하고 엉덩이가 들썩들썩하지만 참으려고 애쓴다. 이런 것이 나이 들면서 생기는 지혜인 듯 싶기도 하다.


어렸을 때 나는 결정장애를 갖고 있었던 듯싶다. 그것을 고치느라 한 동안 결정하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비결정장애자(?)로 살았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그 말을 보고 욕망과 권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시계추를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인생은 때로는 권태롭고 때로는 자유롭다. 그 두 개의 날개로 균형을 잡고 순간순간을 즐기며 소중하게 살면 된다. 두 개의 선택지뿐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선택지를 생각해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평가하고 다양한 시선을 받아들이고 싶다. 갈지자로 걷는 것처럼 방향성이 없어 보이지만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아름답고 충만한 인생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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