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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서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

아껴줄게 (Prod. L-like)

by 황혜원


20201109 월요일

<아껴줄게 (Prod. L-like)>_ 죠지, L-like (엘라이크), 수민(SUMIN)

https://youtu.be/xPOGefOdwcs

귀여운 우리 죠지군. 세상에 이런 빡빡이는 없을 거라던 그 시절을 지나서 라스까지 입성하다니, 여윽시 애플's pick


미끄덩, 양치컵에 물때가 꼈다. 컵의 바닥을 손가락으로 휘적거리니 미끄덩한 것이 손 끝에 닿았다. 확 하고 소름이 돋았다.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 화장실 청소인 자에게 있어 물때란 단순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세우고 ‘네가 날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다그치는 아주 몹쓸 악당인 데다가 ‘넌 날 벗어날 수 없어, 우린 평생 함께 할 거야’하고 음흉스럽게 웃는 스토커와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의 좋은 점이 단 한 가지 있는데,

생의 의지를 돋게 만드는 거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맘에 드는 색깔의 고무장갑을 끼게 된다.


한꺼번에 청소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매일 아침저녁 수시로 솔을 드는 스타일. 한 손에 착하고 잡히는 무인양품의 짧지만 강력한 솔이 청소 메이트다. 세수를 마치고 또는 손을 닦다가도 이 솔을 잡고 세면대 이곳저곳을 문지른다. 욕조 옆에 세워둔 기다란 솔로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수시로 모아둔다. 그런데 매일 쓰는 컵 안에 물때가 잔뜩 껴 있던 것을 몰랐다. 당혹스러웠다. 하루에 적어도 2번은 꼬박 쓰는 컵 속의 물때를 알아채지 못했다니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당황스러웠다.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았던 거라서.


‘지루해서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 이란 <아껴줄게>의 첫 가사가 마치 인생의 물때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세상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대로 두었더니 마음 곳곳에 끼었던 물때들. ‘다시 만져보고 말 걸어줄게’, ‘애틋한 눈 하고 바라볼게’라는 가사가 흘러나오는데 마치 다시금 내 안에 가득 찬 물때들을 거둬내고 뽀득뽀득 깨끗하고 말끔해질 것만 같은 강한 희망이 샘솟는다. 뭐 그 악당, 쉬이 물러나진 않겠지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고!


아껴줄게 - 죠지, SUMIN (prod. L-like) 캡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곡씩 음악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쓴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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