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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혜원 Feb 03. 2021

마음에 드는 건 죄다 막장 아니면 격정 로맨스에 청춘물

<십이월>_생각의 여름

20201127 금요일

<십이월>_생각의 여름


https://youtu.be/ypkrfCshXMA

잔잔한 음악을 안 좋아하는 구나. 결론이 나왔다. 가사가 있으면 슬퍼지고, 리듬이 들어가면 잔잔해지지 않고, 음이 없으면 그냥 소리가 되고, 드라마로 치자면 마음에 들어오는 건 죄다 막장 아니면 격정 로맨스에 청춘물인 거다. 전자음만이 내 심장을 뛰게 해라는 닭살스러운 멘트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셋리스트에 ‘잔잔’이란 해시태그가 거~의 없다.


이리보고 저리봐도 이 밤에 어울리는 ‘잔잔’은 코빼기도 뵈지 않고 죄다 서정적인데다가 가사가 쏙쏙 들어와서 마음이 평안해지기는 커녕 고등학교 때 이불킥하던 추억까지 떠올라 심장이 팔딱팔딱 뛰다 못해 아주 쫄리는 기분이 들 정도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잔잔 키워드는 음악으로 채우지 않고 빗소리로 채웠다. 약 7년 전부터 듣기 시작한 유튭 채널로 매일 빗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한3-4년 전부터는 같은 빗소리만 듣는다 이름 하야 '덕수궁 빗소리☔️' 매일 같이 하루에 4시간 분량을 일하면서 듣는다.


 https://youtu.be/j5BEPRJd3A

(smilemedia님의 비소리 빗소리 -3시간 한옥 에서 물떨어지는소리 - 덕수궁 에서)



어떤 음악이든 들리는 순간 집중력을 잃고마는 아주 산만한 종자라 그렇다. 그럼에도 잔잔한 음악이 내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 건 참 슬프다. 왜 그런지 슬프다. 마치 진짜 힘들 때 트와이스랑 오마이걸 씨스타를 섞어놓고 듣는 버릇이 생긴것처럼 잔잔한 음악에 대한 욕구가 없었다는 게 슬퍼진다.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건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키운 측면인데 들떠 있고 차분하지 못한 성정이 삶을 즐겁게 만들기에는 좋았지만 본업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글이 산으로 간다. 밥벌이가 글 쓰는 일인데 냉철하지 않으면 글이 안 보인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면 쓰는 사람은 재밌어도 독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할 때는 최대한 가라앉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자유롭게 쓰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일 외에 글은 일기만 써왔다. 강박. 완벽한 논리를 구현해내고 싶은 마음. 그런데 자유를 얻는 순간 완벽한 논리가 사라져버리는 거다.

건조한 기술자가 되느냐 자유롭고 좀 엉망인 채로 발가벗느냐


우연히 <생각의 여름>을 틀었는데, 마치 반주 없는 음악이 나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잠이 들 때는 여름이 한창이었으나

눈을 떠 보니 싸늘한 겨울이 왔더라

나도 내가 아니었더라


<십이월>_생각의 여름 中

'[온스테이지] 95. 생각의 여름 - 활엽수' 캡처, https://youtu.be/aCDmgycyJOc

내가 아닌 화자로 산 세월이 너무 길어서 예전의 내가 돌아오지 않는다. 톡톡 튀는 20대의 내가 되고 싶은데 그냥 차갑고 메마른 회사원반 남아있는 기분. 전과는 달러진 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데 쉽지는 않다.

그래서 리추얼에 참여하면서 단 한 번도 수정하지 않고 써내려가기를 마음 속 다짐하고 쓴다. 덧붙이지 말고 꾸미려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쓰자 하고 전보다 잔잔해진 나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잔잔한 음악을 받아들이기를.

그래서 셋 리스트에 나같은 음악들이 더욱 채워지기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곡씩 음악을 선정하고 글을 씁니다.

이번 주는 밤에 만나는 차분해지는 음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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