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퇴사일기 6. 잘하고 싶은 마음의 힘

by Leea


새로 입사한 회사는 프랑스 와인과 다양한 프랑스 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회사의 한국지사였다. 와인 판매와 더불어 와인에 대한 교육도 제공하고 있었다. 나의 주업무는 본사 커뮤니케이션 및 통역,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이었다.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사했지만 대부분 처음 해보는 생소한 업무들이었고,

잘해내야만 한다는,

내가 나 자신에게 준 압박감도 컸다.

그래서 매일 긴장도가 높은 상태로 업무에 임했다.


와인, 그중에서도 프랑스 와인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업무를 자신 있게 해내기 위해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나는 늘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회사에 도착했다. 그날의 업무를 점검하고, 통역이 예정된 날에는 관련 내용을 미리 훑었다. 주말에도 카페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고 배경지식을 공부했다.


누가 시킨 적은 없었다.


공부는 내가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였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은 여전히 즐거웠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지역명, 포도 품종, 와인 이름, 와인 메이커의 이름까지. 외워야 할 것은 끝이 없었다. 게다가 모든 단어가 프랑스어였다. 아무리 반복해도 머릿속에서 자꾸 빠져나갔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한 날에도, 통역 중에 한 번 이상 꼭 되묻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마음은 급격히 작아졌다.


‘공부를 그렇게 했는데 이것밖에 못하다니. 나는 정말 아무 데도 쓸모없는 사람인가 봐.’


하지만 자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일도 출근해야 했고, 내일도 통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야.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어. 내일을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내일은 실패하지 않아야 했기에 더 공부했고, 더 준비했다.

시간이 지나자 통역 중에 되묻는 일도, 실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통역이 두렵지 않았다.


실패를 인정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실력이 쌓인다. 자책에서 머무르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동안 실력이 쌓여갔다.


시간이 지나 맡은 업무들이 손에 익자, 회사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분야와 업무에도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됐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며 제안을 하나씩 구체화해갔다.


“sns를 이용해서 프랑스 와인에 대한 흥미있는 이야기나,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 추천을 해보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네요. 해봅시다.”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에, 일을 잘하고 싶다는 나의 추진력이 더해지면서

내 역할은 점점 커져갔다.


'회사를 가는게 즐거울 수 있구나. 내 경험과 능력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니.'


힘들었지만, 행복한 회사생활이었다.


입사 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본사의 한국지사 담당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나를 불렀다.


"Min, 잠깐 시간이 된다면 미팅룸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미팅룸으로 걸어가면서,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Min을 처음 본 게 아마 2년 전인 것 같은데 맞나요?"


"네,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2년 동안 보여준 Min의 사업에 대한 기여도, 업무성과 등이 놀라워요. 사업을 확장하려고 하는데 한국지사 업무총괄이 필요합니다. Min이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본사 분들도 모두 Min을 추천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입사 2년 만에

한국지사 업무 총괄을 맡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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