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니, 케빈?

퇴사일기 2. '나'로 받아들여졌던 경험, 영국 유학

by Leea


외국을 동경해 왔다. 특히 영어를 쓰는 나라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사대주의'로 이해될 수 있지만 이 '사대주의'에는 기원이 있다.


6-7살이었던 때. 그때에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텔레비전에서 항상 '나 홀로 집에'가 방영되었다. 천방지축 어린이 케빈이 겪는 유쾌한 사건 사고 이야기 중 잊을 수 없는 한 장면.


아마도 그때의 나와 비슷한 나이인 케빈이 장난을 치다 본인 몸집보다 크고 굉장히 비싸 보이는 꽃병을 깬다. 와장창 소리와 함께 부모가 달려오고, 엄마는 케빈을 들어 안는다.


'큰일 났다. 이제 케빈은 혼나겠다. 어떡해!'


하지만 내 예상을 빗나간 케빈 부모의 대사


"괜찮니, 케빈? 다친데 없어?"

"네... 괜찮아요... 죄송해요..."

"오 케빈 너만 괜찮으면 우린 아무 상관이 없단다."


'혼나지 않는다고??'


'조심하랬지?' '왜 맨날 사고를 치는거야!' '어유 너 때문에 내가 살수가 없어!' 같은 말을 예상했던 나에게 케빈 부모의 대사와 다정한 눈빛은 꽤나 큰 충격을 주었다. 저런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아이를 혼내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 그때 이후로 영어를 쓰는 사람들, 영어권 문화에 대한 애정과 동경이 싹트게 되었다.


하고 싶은 것 없이 들어간 대학에서 전공수업 교수님 덕분에 공부의 의미를 깨달은 나는, 문화 연구를 심도 깊게 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고, 6살 때부터 동경해왔던 영어권 문화의 본고장, 영국으로 향했다.



영국 학교에서의 첫날.


그렇게 원하던 곳, 원하던 환경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 마주하는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어려웠다. 첫 수업을 위한 교실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참을 헤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시간에 맞춰 들어선 교실. 다양한 국적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있었고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새로움 혹은 낯섬,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어려움들 속에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사실은 모두 영어를 하고 있었음에도 몇몇 학생의 말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다양한 국적을 가져서이기도 했지만 가장 문제는 영국의 북쪽에서 온 학생들의 말이었다. 북부 영국은 특유의 악센트를 가진다.


'오늘은 첫날이어서 그럴 거야.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지.'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가도 50%를 알아들으면 많이 알아듣는 것인 상황이 지속되었다. 누군가의 말을 못 알아듣기 시작하니 수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고, 수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으니 내 차례가 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국의 수업처럼 교수님이 왕창 말하고, 그것을 받아 쓴 다음 외워서 시험을 치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수업도 물론 없지 않았지만 아주 소수였고, 거의 대부분의 수업에서 학생들이 말하는 시간이 교수가 말하는 시간보다 길었다.


'수업 내용을 마스터하고 가면 될 거야. 내가 할 말을 외워가자.'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날이 이어졌지만, 아무 말도 못 하는 수업들이 쌓여 가면서 좌절감이 밀려왔다.


"(큰 소리로 울며) 괜히 왔어. 돈이 아까워.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를 않아. 엉엉"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하며 큰 소리로 울었다. 평소 같았으면 옆 자리의 사람들이 신경 쓰여 그렇게 크게 울지 못했을 텐데 그렇게 큰 소리로 우는 내가 나 자신도 놀라웠다.


퉁퉁 부은 눈으로 기숙사에 들어섰다. 공용 부엌에 있던 친구 두 명이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민영,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바보인가 봐. 수업에서 한 마디도 못해. 괜히 왔나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엉엉"


친구들의 걱정 어린 표정과 말에 다시 한번 눈물이 터졌다.


"걱정하지 마, 민영. 넌 잘하고 있어."

"다른 나라에서 왔잖아. 첨엔 다 그래. 우리가 도와줄게."


생각해 보면 그들도 영어권 국가 친구들이 아니었는데, 외국어를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하고 도와주겠다고 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랑 이야기를 많이 하자!"

"저녁마다 여기서 내일 수업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그 두 명의 친구들과 이 일을 계기로 가까워졌고, 이후 매일 저녁 공용 부엌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업 내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자기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친구들 덕분에 학교 생활도 차츰 나아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공용 부엌이 내가 처음으로 ‘나 자신으로 있어도 괜찮았던’ 공간이었다.


괜찮니, 민영?

응, 괜찮아.


동경에서 시작해 '하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날아온 영국. 그리고 예기치 못한 어려움들과 극복의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영국에서의 다사다난했던 시간들을 지나,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길고도 짧았던 1년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준비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에서 마주할 진실은 꿈에도 모른 채, 그렇게 한국으로 향했다.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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