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일기 1. 학창시절
학창 시절의 나는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화가, 변호사, 작가, 선생님 같은 단어를 떠올려 보긴 했지만 어느 한 단어가 구체적인 목표가 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다. 반에서 언제나 1, 2등을 했고, 선생님과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 그렇지만 전형적인 모범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번씩 선생님을 놀라게 하는 행동을 하곤 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봄방학 종업식에 머리 염색을 하고 간다든가 하는.
"머리가 왜 그래."
"염색했어."
"내일 학교 가야 되잖아."
"머리에 검정 스프레이 뿌리고 가면 돼. 그리고 내일은 종업식이라서 괜찮아."
"으이고."
엄마는 종업식 하루를 못 참는 딸이 이해되지 않는듯 했지만, 공부 잘하는 딸, 어디 가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딸의 어떤 행동도 그녀에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종업식 날 아침.
머리를 묶고 보이는 부분에 검정 스프레이를 뿌렸다.
'치익 칙, 칙칙 칙 치이이익 칙칙'
"엄마, 다 뿌려졌는지 좀 봐줘."
"(머리통을 요리조리 살피며) 스프레이 줘봐."
엄마는 내가 잘 볼 수 없는 머리 뒤쪽을 포함해 노란 머리가 보이는 곳을 찾아 꼼꼼하게 검정 스프레이를 뿌려줬다.
"다 됐네."
"다녀오겠습니다."
교실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약간은 설레고, 약간은 조마조마하지만 '아무도 못 알아볼 거야 침착하게 행동하자'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각자 친구들과 떠들기 바쁜 아이들은 나의 작은 일탈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아주 친한 친구들만이 평소에는 묶지 않던 머리를 묶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그 친구들에겐 귓속말로 '나 염색했다'하고 자랑했다.
"OO중학교 3학년 학생들, 3학년 학생들은 지금 운동장으로 모여주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말씀을 포함했던 운동장 조회가 있던 때였다. 1-20분의 운동장 조회가 끝나면 해방이라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다.
'어 날씨가 아까보다 더 흐리네.'
학교를 올 때도 흐린 날씨였지만 더 흐려진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조회는 금방 끝날 것이다.
성적 우수상, 선행상 등을 수여하는 수여식이 끝나고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이 시작되자 한 방울씩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안되는데...'
한 방울씩 내리는 비는 머리에 뿌린 검정 스프레이를 녹게 하기엔 충분했지만 이미 시작된 교장선생님 말씀을 중단할 만큼은 아니었다. 습한 날씨에 이미 스프레이는 물에 녹기 좋은 상태가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이마 윗부분이 촉촉해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교복 셔츠 위로 검정물이 뚝뚝 떨어졌다.
교무실.
학년 주임 선생님은 무릎을 꿇고 손 들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집에 무슨 일 있니?"
"...없는데요."
어른이 시키는 일은 잘하는 학생이었던 나. 공부 역시 시키는 일이어서 잘했다. 한 번씩 왜 저런 행동을 하지 하는 의문을 들게 했지만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영어를 좋아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적성은 없었고, 되고 싶은 직업도 없었다. 하지만 수능이 다가오자 대학의 과를 선택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았다.
"여자 직업은 초등학교 선생이 최고지."
나의 부모는 늘 저렇게 이야기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작은 소도시에서 삶을 꾸린 부모라면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1지망 oo교육대학
2지망 nn교육대학
3지망 cc교육대학
3지망 모두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는 교대에 지원했다. 하지만 모두 떨어졌다. 교사가 되고 싶은지는 몰랐지만 어른이 시키는 것을 해야 할 것 같았고, 재수를 했다. 1년 후 다시 교대에 지원했지만 또 모두 떨어졌다. 삼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추가모집으로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수능시험-실패-재도전-실패의 2년이란 시간을 보내며 '실패'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패배자'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고, '대학은 왜 가는 거지' '인생은 왜 사는 거야' 같은 허무감에 빠지게 되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모범생, 남들의 부러움을 사던 학생이었던 나는 패배의식과 원인 모를 분노, 허무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1년 늦은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전공 선택 과목이었던 영미문학연구 수업 첫 시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말합니다. 그럼 어떤 순간부터 죽어간다라고 느끼게 될까요?"
"..."
특별히 대답을 하는 학생은 없었다. '죽어간다고? 나는 안죽어가고 있지 않나. 할머니가 되면 죽어간다고 생각하게 되는건가...'
"사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한 발은 요람에, 한 발은 무덤에 딛고 있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동시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지금 '내가 살고있다' 고 생각하겠지만 죽어가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전구가 탁 하고 켜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실 죽어가고 있기도 하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저 교수님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공부란 이런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걸까? 공부를 하고 싶다. 교수가 되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이 패배의식에만 사로잡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던 내가 대학교 첫 수업에서 하고 싶은 것을 찾게 된 것이다. 그 순간 이후 나는 공부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공부하는 삶을 선택한 그 결정이 어른으로서 필요한 어떤 선택을 계속 미뤄두게 했다는 사실을.
*매주 금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