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
우리의 불안은 어디서 시작될까?
확실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한 걱정,
남들에 비해 내가 별 볼 것 없단 생각이 들 때,
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을 미룰 때,
내가 오늘 하루 어떤 것을 실수하진 않았는지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한건 아닌지
하루를 되새김질할 때,
예전에 했던 나의 못났던 행동들과 말들이 떠오를 때,등등 수도 없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것에 얽매여 있는 느낌이 드는 순간,
그게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 싶다.
사전에서 ‘불안’이란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한 상태를 의미한다
남들이 잘나 보이면?
나도 그에 못지않게 잘나 지면 되지 않은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면?
빠르게 끝내고 신경 끄면 되지 않은가.
오늘 하루나 과거에 못났던 내 모습들에 대한 걱정?
이미 지난 일이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고 오해를 풀면 된다.
어떤 것을 실수했다면?
고치고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
지나온 일인 ‘과거‘와 지금인 ‘현재‘
그리고 앞으로 인 ‘미래‘
과거는 내가 관여할 수 없고, 현재와 미래는 나의 행동과 시선에 따라 달렸다. 비관적인 시선이냐 낙관적인 시선이냐의 차이다.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저 ‘불안‘ 끝으로 몰아붙일 것인가. 자기 자신의 선택이다.
모든 성장은 불안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부족함에서 불안을 느끼고,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 한 단계씩 성장을 일으킨다.
원래 모든 인간들은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결핍들이 있다. 그 ‘결핍‘으로 인해 나와 다른 또는 더 나은 타인을 보면 질투하고 더 나아가 배척하게 되는데, 타인이 부러워서 배척하거나 미워하며, 정작 나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아지려 하지 않는다면, 그 얼마나 미련한 짓인가.
원래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다. 어차피 사회적인 면모 때문에 미움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을 것 아닌가.
내 미움의 대상은 미움받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생각해 봐라. 한 번쯤은 인생에서 미워했던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한번 누군가가 미워지면, 싫어할 이유를 끝도 없이 찾게 된다. 내가 미워할 정당한 이유들을 찾아 합리화할 수 있게 뇌에서 자동으로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상대방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자의로 스트레스 쌓지 말고, 쟤를 뛰어넘을 더 큰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하자.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나의 성장을 돕는다. 인생에서 나만의 롤 모델이 생기고, 지켜본다는 거 자체만으로 그 사람의 좋은 점, 배울 점들을 무의식적으로 몸에 새기고 있단 뜻이니.
자신의 결핍, 부족한 점만 알아채고 인정해도 나아갈 수 있다. 자기 객관화가 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하게 돼있다.
모든 개개인의 사람들이 다 다르기에 배울 점이 있는 것이고, 그 배울 점들을 하나씩 새기고 내 삶에 접목시켜 살아가면 된다. 그렇게 접목시킨 요소들이 모여서 처음엔 티도 안 나는 작은 변화가 나중엔 서서히 가속도가 붙는다.
결국 ‘한계‘란 것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용기가 없어서 생기는 다양한 ‘핑계’
타인으로부터 오는 ‘열등감‘
두 번 있을 인생도 아닌데,
나 자신을 너무 ’ 한계‘라는 틀 안에 가둬두지 말자.
나 또한 그렇다. 글재주가 너무 없어, 글이나 편지를 술술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래서 시작한 글쓰기 연습들이 모여 지금은 그 글들이 발행되고 있다.
못할 거 하나 없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잘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아쉬운 거고.‘
난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