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활공작소 Jul 02. 2020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우리가 알바몬이었던 시절

우리는 누구나 알바몬이었다. 직장 동료들의 그때 그 시절

얼마 전 부서 회식 자리에서 과거 알바 썰이 풀렸다. 라떼는 말이야~. 하나 둘, 자신의 알바 썰을 푸는데 뭐? 그런 알바도 있어? 싶더라. 고백하자면 나도 알바몬이었다. 누구나 그랬듯. 아르바이트의 입문인 전단지 알바는 물론이고 카페, 빵집, 편의점, 독서실, 서점, 인형탈, 콘서트 스텝, 연극 조연출, 스피치 조교, 관절 실험 대상까지... 그래, 이쯤 되면 내 청춘의 8할은 알바몬이었다. 우리 모두의 과거가 그렇듯! 부서원들만 공유하기 아까워 생공인들의 썰을 긁어모아보았다.

생활공작소의 제품 사진을 담당하고 있는 이경연 대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일했던 독특한 경력이 있다. 6년 전쯤, 남아공에서 잠시 사진작가로 일했던 그녀는 한 번씩 소일거리가 들어왔단다. 바로 작화! 나무판자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는데, 성인 두 명이 충분히 가려질 만한 나무판자에 피에로를 그렸단다. 판자는 케이프타운의 놀이동산에서 포토존으로 사용됐다. 당시 한화로 10만 원 정도로 남아공 기준으로는 제법 높은 편에 속해 제법 재미 좀 봤다더라.


이제는 많이 사라진, 캐셔

묙사원이라 불리는 영업부서 이미옥 사원은 용돈벌이를 위해 마트에서 1년 정도 캐셔를 했다. 쉽게 할 수 있을 거란 인식이 있지만,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세다고. 계산하는 기계인 포스 다루기가 복잡하고, 업무를 분담하는 조장 언니가 무서웠단다. 게다가 당시에는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깨나 고생했다고. 대신,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급여가 높았고, 실내에서 하기 때문에 날씨 영향이 없는 게 장점이었다. 돈 세는 스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었던 캐셔는, 하고 싶어도 이젠 하기가 힘들단다. 셀프 계산대가 도입되면서 많이 사라져 버렸거든.


왼쪽 사진의 주황색이 어릴 적 여름 캠프에 참가한 기은 대리, 오른쪽이 대학생이 된 후 해당 캠프 선생님으로 참여한 사진


생활공작소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정기은 대리. 그녀는 귀에 쏙쏙 박히는 발음과 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딱 어울리는 아르바이트를 했더라. 바로 여름 캠프 선생님! 그녀가 지원한 여름 캠프는 아이들이 놀면서 창의력과 수리력을 기를 수 있는 캠프란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당 캠프에 참석했었고, 딱 10년 후 자신이 참석한 캠프의 선생님으로 지원했다고. 당시, 최초로 수리력 상도 받아 그녀가 지원했을 때, 선생님들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와 선생님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위 아이스크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훔치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가진 전가람 디자이너는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아이스크림 공장은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았다고. 그녀가 일한 공장은 시중에 판매하는 쭈쭈바를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그녀는 아이스크림 내용물이 들어가는 투명 플라스틱을 기계에 끼우는 일이었는데 일이 힘들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시간도 야간대였고, 근무 환경은 손이 얼마큼 추운 영하를 자랑했다. 일이 고된 만큼 급여는 높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저 홀로 쭈쭈바 불매운동을 했다고. 


싸이월드가 문을 닫아 사진은 저 멀리 추억 속으로 ☆

브랜드 마케팅 사업부서의 최 이사님은 돈다발을 얼굴에 던지기도 하고 목을 조르기도 하고…! 그렇다. 그는 바로 데이트 폭력남! 이 아니고 소싯적 방송인(?)이었다. 그 이름은 엑스트라. ‘그것이 알고 싶다’의 데이트 폭력남부터 지나가는 행인, 학생 1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섭렵한 엑스트라였다. 태조 왕건, 신귀공자, 여우야 뭐하니,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꽤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주변에 비밀로 하고 엑스트라에 적극 참여했는데, 급여가 높아 돈을 긁어모았단다. 그 돈으로 데이트도 하고, 부모님께 효도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활공작소에서 야무지기로 유명한 강민서 대리. 그녀는 유모차를 판매한 적이 있단다. 박람회에서 어린아이를 둔 부모님 대상으로 유모차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이었는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말고는 좋은 점이 없었단다.(ㅜㅜ) 규모가 큰 박람회라 연예인도 많이 봤지만 그 재미도 잠시, 아기를 안고 다닐 수 있는 힙 시트를 종일 메고 있으면서 설명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박람회 시작과 끝에 뒷정리였단다. 그래도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사진은 네이버에서 가져왔습니다.

극한 알바! 하면 빠질 수 없는 리스트 중 한 군데가 바로 키즈 카페. 돈 벌려고 힘들고 어려운 극한 알바는 다해봤지만 키즈 카페는 정말 엄두가 안 나더라. 영업부서의 정수연 사원은 키즈 카페 아르바이트를 별 다섯 개 중 네개를 줬다. 매장 청소와 장난감 정리, 모래놀이, 기차놀이기구 태워주기 같은 업무를 했는데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키즈카페의 단점이라면... 아이들이 공룡 소리나 하이톤의 높은 톤의 목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데 청력이 조금 걱정되는 정도라더라. 아가들이 응아하고 뒤처리를 도와달라고 많이 하는데 그 경험으로 조카 봐주기는 식은 죽 먹기라고!


들어는 보았나. 환자 이송 알바. 집 꾸미기가 취미인 박현대 사원은 군대를 막 전역하고 학비를 보태기 위해서 병원에서 잠시 이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이송 알바라 해서 한시가 급한 위급 상황 속에서 하는 일인 줄 알았더니, 큰 병원에서 환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일이라고. 상황에 따라 수술실로 가는 환자, 또는 병실로 돌아오는 환자를 간이침대로 이송하는 역할이라더라. 좋은 점이 뭐냐 물었더니 좋은 점보단 인생에 뜻깊은 경험을 많이 했다고. 환자뿐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들과도 많이 친해질 수 있었는데 병상에 있으면서 듣는 많은 이야기들이 삶의 지혜로 들렸단다. 왜인지 소중한 사람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일자리였다고.




누구나 알바몬이었던 시절, 생공인도 알바몬을 피해 갈 순 없었다. 지금은 비록 시원한 사무실에서 새로운 스트레스와 직면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날들을 벗어나 '나도 회사원이었지..(아득)' 하며 날 좋은 날 테라스에 가만히 앉아 좋은 기억으로 회상하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열일하는 생공인, 모든 회사원들 화이팅 ! 

매거진의 이전글 이 구역의 소비 요정은 바로 나! 동료들의 플렉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