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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찬바람〉

수능

by 있는그대로

수능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찬바람이 분다.기상청에서도 ‘수능 한파’라는 말을 쓸 정도로, 매년 이맘때면 유난히 추운 날이 찾아온다.그 바람 속에는 수많은 부모와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섞여 있는 듯하다.


나에게도 그 바람은 오래된 기억을 데려온다.우리 집은 수능을 여섯 번 치렀다. 큰아이부터 막내까지, 한 명 한 명의 수능 시기마다 집안 전체가 함께 긴장했다.집안은 수능을 보는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는 매번 같은 마음으로 성지를 찾아가 백일 기도를 드렸다.수능 당일에는 아이의 시간표에 맞춰 기도하고, 쉬는 시간에는 나도 잠시 숨을 돌렸다.국어 시간이 시작되면 손을 모으고, 수학 시간이 되면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점심시간에는 아이가 먹을 도시락을 떠올리며 나도 같은 도시락을 먹었다.하루 종일 시험장에 있는 아이와 함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큰아이의 첫 수능날은 유난히 추웠다.성지의 차가운 나무 의자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기도했다.점심을 먹고 영어 시험 시간이 되어 다시 기도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졸았다고 했다.시험이 끝나고 교문을 나오는 아이가 우리 얼굴을 보더니 대성통곡을 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도 영어 듣기 시간에 잠깐 졸아 몇 문제를 놓쳤다고 했다.


남편은 몹시 미안해했다.“내가 기도하다 졸아서 그런가 봐.”그다음부터 남편은 수능 날마다 커피를 마셨다.졸지 않기 위해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그래서일까. 재수를 한 큰아이는 두 번째 수능날엔 졸지 않았다.


둘째의 수능날, 새벽 공기가 유난히 매서웠다.시험장 앞에 도착해 아이를 내려주는데, 아이가 조심스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엄마, 아빠,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편지 한 장이었지만,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에게 "두개이상 틀리면 안돼". 남편이 다짐하듯 말했다. 차문이 닫히고 아이는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가로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아이의 뒷모습이 멀어질수록나는 마음속으로 또 기도를 시작했다.


성지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아이 생각뿐이었다.장이 약한 아이가 혹시 소화가 안 될까 걱정돼, 수능 전날 미리 죽을 끓여 아침에 다시 데워 싸주었다.우리도 함께 그 죽을 먹었는데, 맛이 조금 이상했다.‘혹시 상한 건 아닐까?’그 순간부터 불안이 시작되었다.‘탈이 나서 시험을 망치면 어쩌지?’


시험이 끝나고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오후 여섯 시가 넘어도, 일곱 시가 넘어도 소식이 없었다.‘왜 편지를 줬을까.’ ‘시험 끝나고 왜 데리러 오지 말라고 했을까’ '죽이 상해서 장이 약한 아이가 탈이 났을까' '두개 이상 틀려서 집에 못오나' 온갖 불길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남편이 “두 개 이상 틀리면 안 돼.” 하던 그 말이 아이에게 짐이 되었던 건 아닐까.


밤이 깊어가고, 가족들은 아파트 주위를 돌며 아이를 찾았다. 아이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핸드폰은 공부에 방해된다고 정지시켜 둔 터라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다. 그 시절, 수능 후 아이들이 스스로 생을 놓는 일이 뉴스에 자주 나오던 때였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홉 시가 넘어 경찰에 신고하려는 순간, 버스정류장에서 아이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엄마!” 그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는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PC방에 가서 정답을 맞춰보고, 노래방에 들렀다고 했다. 평범한 아이의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그렇게 고맙고, 눈물 났다.


‘두 개 이상 틀리면 안 된다’던 그 말,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돌처럼 아이의 마음 위에 얹혀 있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 날의 몇시간을 생각하면 그 긴장감. 부담감. 미안함으로 지금도 가슴이 오그라든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그 이야기를 꺼냈다.“그날 미안했어. 너한테 얼마나 부담이 되었을까.”아이는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래서 지금 나 잘 살고 있잖아요.”그 쿨한 대답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부족한 부모인데도 잘 자라준 아이들이 그저 고맙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수능이란 단어조차 잊은 듯하지만, 매년 11월이 되면 그때의 차가운 공기가 여전히 내 마음을 스친다.


기도 중 졸던 남편의 모습도, 편지를 내밀던 둘째의 떨림도, 버스정류장에서 울먹이던 내 얼굴도 그대로 남아 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 ‘잘 해야한다’ 는 마음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건 점수보다 웃음이었다. 공부보다 놀이, 경쟁보다 여유, 목표보다 하루의 즐거움을 가르쳤어야 했다.


이제 수능 한파가 오면 나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한다.


춥지 않게, 두렵지 않게,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따뜻하게 걸어가게 해주세요.

그 바람이 찬바람을 녹이고, 누군가의 떨리는 마음을 감싸주길. 그렇게 또 한 해의 수능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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