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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이청준

소록도와 우리 가정

by 있는그대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소록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인간의 선의와 자유, 사랑이 어떻게 충돌하고 억압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원장 조백헌은 환자들을 위해 천국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의 천국은 결국 ‘자신이 믿고 싶은 이상’이 투영된 것이었다. 환자들은 원장의 선의 속에서도 여전히 현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했고, 자유를 스스로 누릴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우리 가정을 떠올리게 된다. 소록도의 원장이 동상을 세워 이상을 증명하려 했듯, 가정 속에서도 가장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가족이 편안하기를 위해 ‘천국’을 만들고자 한다. 더 잘되기를 바라고, 실수 없이 살기를 바라며,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세운다. 겉으로 보면 모두를 위한 선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각각의 자유와 선택은 억압당하고, 서로를 위한 일들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순간이 생긴다.


가정 속 천국도 결국 ‘당신들의 천국’과 다르지 않다. 가장의 천국은 주로 ‘가족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신념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가족 구성원 각각의 삶은 가장의 뜻과 다르게 흘러간다. 누구 하나가 자유를 느끼지 못하면, 선의로 행해진 행위도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갈등이 된다. 소록도에서 황희백이 깨달았듯, 자유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누리는 것이다. 아무리 가장이 천국을 세우고 싶어도, 가장이 책임과 의무를 힘겹게 다 해도 그가 주는 규칙과 통제 속에서는 개인의 진정한 자유가 제대로 꽃피지 못한다.


가정 속 천국이 성공적으로 기능하려면, 원장의 역할을 가장이 아닌 ‘가족 모두의 합의’로 바꾸어야 한다. 일방적이 아닌, 사랑과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주어진 목표는 불신과 갈등만을 낳는다. 서로를 위해 한다는 행동이 서로를 억압하지 않도록, 자유와 사랑이 함께 행해질 수 있도록, 각자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상욱이 말했듯, “당신들이 만들어주려 한 천국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소록도 섬이 아무리 원장의 이상으로 가득 차 있어도, 환자들의 천국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듯, 가정 속에서도 가족 각자의 삶과 선택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우리들의 천국’이 가능하다.


결국 가장이 세운 천국과 원장의 동상은 겉보기에는 안정과 질서를 주지만, 그 안에서 자유를 억압한다. 소록도의 환자들이 그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선택해야 했듯, 가족도 각자의 선택과 자유 속에서 사랑과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가정의 천국은 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자유와 사랑이 깃들어 서로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 속에서 탄생한다.


『당신들의 천국』은 단순히 소록도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과 가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장의 선의가 때로는 부담이 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유가 억압되는 순간, 우리는 소록도의 환자들처럼 스스로의 ‘천국’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천국은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가 선택하고 누리는 자유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작품은 우리에게 조용히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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