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떠받친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딩씨마을의 꿈>을 읽는 동안 나는 오래도록 한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탐욕과 무지, 제도가 낳은 비극을 고발하는 중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거대한 체제나 권력보다 훨씬 더 소박하고 인간적인 존재—오직 마을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바르게 살고자 했던 한 **‘할아버지’**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따라가는 일은 단순히 한 마을의 비극을 읽는 것을 넘어,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로 들어온다.
1990년대 허난 지방에서 실제로 벌어진 혈액 매매와 에이즈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닌 철저한 ‘인재’였다. 가난, 제도의 부재, 관리의 무능, 탐욕이 뒤섞이며 만들어낸 불행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이 사건은 통계나 보고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시선, 그의 일상과 선택을 통해 이 비극은 바로 이웃집에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느 마을에나 있을 법한 “존경받는 어른”, “평생 고생하며 자식을 키운 부모”,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할아버지는 마을의 기둥이었다. 남들보다 먼저 일어나 공터를 쓸고, 아픈 이웃의 집을 살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자신의 일처럼 품었다. 이해타산보다 공동체의 안녕을 먼저 생각했던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아끼던 마을은 결국 할아버지를 원망한다. 그의 아들을 통해 시작된 **‘혈액 매매’**가 마을 전체의 파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할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피는 웅덩이 물처럼 다시 차오르니 괜찮다”며 혈액 매매를 설명하는 장면은 잊기 어렵다. 무지에서 비롯된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마을의 가난을 이겨 보려는 절박함과 자식을 잘 살게 해주고 싶은 간절함이 동시에 있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마을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부서뜨리고, 결국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끝내 할아버지는 아들을 스스로 죽이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평생 지켜온 윤리와 신념은 죄책감의 무게 아래 깨어져 버린다.
그의 삶을 따라가며 나는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왜 선하게 산 사람은 종종 보상받지 못하는가.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은 마지막에 홀로 남겨지는가.
이 질문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실제 우리의 삶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로 시선이 이어졌다. 자본주의가 급속히 번지던 중국의 시대적 배경은 오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딩후이 같은 인물들—제도의 빈틈을 악용하고, 사람들의 무지와 약함을 이용하며, 부당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빌라 수천 채를 사기 치고, 피해는 사회 초년생·신혼부부·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이야기. 중소기업 대출로 사업이 아닌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이익만 챙긴 뒤 빠져나가는 방식. 시대는 달라졌지만 탐욕의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반면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다른 이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옳은 길을 선택하며, 남들보다 조금 더 희생하는 사람들—그들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았음에도 더 큰 상처를 받는다. 때로는 할아버지처럼 오해받고, 배척당하고, 고단한 결말을 맞기도 한다. 소설은 그 불편한 진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할아버지의 삶은 비극적이었지만, 그의 공동체 정신과 진정성은 시대를 넘어선 가치였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의 선함은 처절했고, 잘하고자 한 그의 선택이 여러상황으로 잘못 흘러가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적 절망과 죄책감은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희생자였다. 탐욕이 제도보다 앞서고, 욕망이 공동체보다 강한 시대 속에서 그의 신념은 지나치게 순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있다.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는 누군가, 공동체의 어려움을 먼저 챙기는 사람, 자신의 이익보다 옳음을 선택하는 사람.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해 오히려 손해를 보고 상처받는 사람들 그 가족들. 시대는 변했지만 선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은 변하지 않았다. 탐욕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활개 치고, 제도의 빈틈은 여전히 악용되고 있다.
그래서 『딩씨마을의 꿈』은 단순한 중국 사회 고발서가 아니다. 금서가 되었던 이유도 단지 체제를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추함과 시대의 병폐를 너무 적나라하게 비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은 언제나 진실에 불편함을 느낀다.
책을 덮고 나는 다시 한 번 ‘선하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결과를 알 수 없어도, 때로는 보상받지 못해도, 공동체를 위해 나를 조금씩 내어주는 삶. 그것은 할아버지가 살아낸 삶이었고, 우리가 지키고 싶어 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제 할아버지처럼 선택할 자신이 없다. 그 삶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때로는 비극으로 끝날 수도 있음을 알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비극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극을 경험하고 아는 사람으로
다시 선택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딩씨마을의 꿈』은 우리 각자에게 작은 결의를 요구한다. 탐욕보다 공동체를, 이익보다 윤리를 선택하는 삶.그 삶은 언제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네 삶 속에서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할아버지처럼 조용히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삶이 너무나 가깝게 무겁게 다가와 쉽게 내려 놓지 못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