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만의 순례길을 걸어가야겠다
처음 『순례주택』을 읽었을 때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나는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두 번째 읽었을 때, 마음 한가운데 숨어 있던 오래된 감정들이 불려 나왔다. 누군가의 삶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순례 씨의 한마디, 수림이의 작은 깨달음, 빌라 안을 흐르는 관계의 온도들이 나에게는 자꾸만 오래된 감정의 먼지를 털어냈다.
순례 씨가 개명한 이유—‘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로 살고 싶어서—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 관계에 치이고, 역할에 묶이고, 의무와 책임감에 갇혀 숨이 막혔는데 순례자라는 단어가 그 단단한 문을 여는 열쇠로 다가왔다. 막연히 생각하던 것ㅡ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순례씨를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
무엇보다 잊히지 않는 장면은 ‘최측근’이라는 호칭이다. 혈연도 아니고, 법적인 관계도 아니고, 이해관계도 없다. 그저 서로의 마음이 닿아 만들어진 자리. 인간관계가 복잡하고 상처가 많을수록, 그 단순하고 깊은 말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내가 그런 자리를 허락해준 적이 있었나. 문장을 읽던 중 문득 목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살아오며 나는 관계의 이름을 너무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딸. 며느리. 아내. 엄마. 언니. 동생. 친구. 관계의 틀 안에 나 자신을 맞추느라 마음이 자유로웠던 적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순례 씨는 틀보다 마음을 먼저 본다. 스스로에게 관계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어른이라는 것을 나는 이 장면에서 배웠다.
순례 씨의 삶은 평범에서 조금 비껴 있다. 스물에 결혼하고 서른다섯에 이혼하고, 아들이 하나 있고, 재혼은 하지 않았고, 연애는 몇 번 했고, 직업은 세신사. 그녀는 남이 뭐라 해도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만큼만 취하며 당당했다. 건물주임에도 임대료를 시세대로 받지 않고, 생활비가 되는 만큼만 받는다. 처음에는 고개가 갸웃해졌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자본의 흐름보다 마음의 흐름을 먼저 보는 순례 씨의 태도는 나에게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자유였다. 나는 무엇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나.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은 “승갑 씨가 그 사람들 철들 기회를 뺏었는지도 몰라.”라는 순례 씨의 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한히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내 마음이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누군가의 성장을 빼앗는 호의, 누군가의 책임감을 덮어주는 사랑, 그것이 결국 미성숙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줘야 하는 사람’의 위치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을까. 수림이네 가족의 모습 속에 나의 모습이 겹쳐져서 마음이 뜨끔했다. 사랑을 주는 쪽이 더 기쁘지만, 때로는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사랑일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이해하고 행동하고 싶어졌다.
순례 씨가 말하는 ‘어른’의 기준—“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요즘 아이들도, 어른들도 너무 수동적이라는 생각을 책이 줄곧 보여준다. 누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고, 누가 말해준 대로 살아가고, 스스로 묻고 생각할 틈을 잃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시선. 사회기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삶을 끌어가는 사람, 부족해도 자기 발로 서보려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은 어른이라고 부른다. 그 문장을 읽고 나는 한참 동안 다른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자식이 어른이 되어서도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 헌신대문인지도 모른다. 승갑씨가 무조건적 지원으로 수림부모가 철들지 못한 것처럼. 더 큰 사랑 주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지혜를 배운다.
순례 씨의 생활 방식—중고 물건을 쓰고, 탄소를 줄이려고 차를 타지 않으려 하고, 통장 잔고가 1000만 원을 넘지 않게 하는 절제—이 모든 것이 과한 욕심 없이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잔고 1000만원 넘기지 않기는 신선하게 다가오며 숫자가 계속 늘어나기만 바랐던 욕심을 바라본다. 특히 ‘교과서를 가장 좋아한다’는 대목에서 울컥했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책일지도 모르지만, 순례 씨에게는 삶의 뼈대를 세우는 책이었을 것이다. 기본을 잊지 않는 사람의 삶은 이렇게 정돈되어 보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순례주택』은 읽기 쉽지만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두 번 읽고도 여전히 마음 한 곳을 세게 치는 문장이 남아 있다. 어쩌면 이 책은 관계의 이름을 다시 배우게 하고, 어른다움의 기준을 새롭게 하게 하고, 살아가는 태도의 무게를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순례의 과정 자체인지도 모른다.
책을 덮은 지금, 나는 내 삶의 줄자를 조용히 꺼내 들게 된다. 돌아보고, 재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손끝으로 짚어보게 된다. 그리고 가만히 속삭인다. ‘나도 나만의 순례길을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