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세 여인과 나의 거리

by 있는그대로

<달과 6펜스>를 다시 읽으며 깨닫게 된 것은, 이 소설의 중심이 스트릭랜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이야기의 축이 아니라 촉매에 가깝다. 삶을 뒤흔드는 힘은 그에게서 나오지만,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쪽은 언제나 그 곁에 선 여성들이었다. 에이미, 블란치, 아타. 이 세 여인은 한 남자를 사랑한 인물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기 삶을 걸었던 여성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누가 옳았는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여자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에이미 스트릭랜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신뢰한 여성이다. 그녀는 스트릭랜드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남편으로 대했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정을 함께 책임질 사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실한 남성. 에이미의 선택은 순진해서가 아니라, 당대 여성에게 요구되던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영성의 관점에서 보면 에이미는 ‘틀리지 말아야 하는 나’에 깊이 동일시되어 있다. 좋은 아내, 책임감 있는 여성, 정상적인 삶. 타라 브랙이 말하는 ‘트랜스 상태’, 즉 사회가 규정한 자아상에 최면처럼 잠겨 있는 상태다. 그래서 그녀의 고통은 배신 자체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어온 세계가 무너졌다는 데서 온다. 에이미에게 필요했던 것은 남편의 귀환이 아니라, 무너진 자아를 부여잡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블란치 스트로브는 가장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녀는 스트릭랜드를 구원해야 할 천재로, 자신을 초월하게 만드는 존재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열정이라기보다 절박에 가깝다. 자기 삶을 설명할 언어가 ‘사랑’밖에 없던 상태,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방식이 타인을 향한 헌신이었던 여성.

불교적으로 보면 블란치는 사랑에 집착한 것이 아니라,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 붙잡혀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타라 브랙의 말처럼, 블란치의 헌신은 공포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자기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진다. 그래서 블란치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가장 깊은 자기연민이 필요했던 인물이다.


아타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스트릭랜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성이다. 그녀는 그를 남편으로 완성시키려 하지 않고, 사회로 되돌리려 하지 않으며, 구원하거나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는다. 그녀의 사랑은 열정적이지 않지만 안정적이고, 헌신적이지만 희생적이지 않다. 마이클 싱어의 언어로 말하면, 아타는 내면의 저항이 거의 없는 상태다. 삶이 이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붙잡지 않고, 사랑조차 서사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스트릭랜드 곁에 머물되,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녀에게 그는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이며, 그 거리 조절 능력이 아타를 가장 성숙한 인물로 만든다.


이 세 여인을 바라보며 나는 결국 나 자신을 본다. 옳으려 애쓰던 순간의 나, 사랑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나, 그리고 잠시나마 놓아버리고 머물렀던 나. 이 소설은 여성 인물들을 통해 우리 마음의 서로 다른 상태를 보여준다. 에이미는 ‘옳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붙잡고 고통받는다.블란치는 ‘사랑받아야 존재한다’는 이야기에 자신을 내어준다.아타는 이야기를 붙잡지 않기에 고통에 삼켜지지 않는다.


영성은 어느 쪽이 정답인지 묻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묻는다.지금 이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달과 6펜스>는 예술가의 광기를 찬미하는 소설이 아니라, 여성들이 자기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두었는지를 묻는 이야기다. 스트릭랜드는 하나지만, 세 여인은 각기 다른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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