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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ㅡ주니퍼공원산책ㅡ생일파티

가족여행 32일 차

by 있는그대로

아침부터 달그락거리는 소리 — 언니가 분주하다.
오늘은 조카 부부가 집에 와서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
언니는 계란과 감자를 삶아 큼직하게 썰고, 셀러리와 함께 마요네즈에 버무려 냉장고에 넣는다.
왕새우는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해 삶은 뒤, 역시 냉장고에 차게 식혀 둔다.


아침을 먹고 슈퍼에 들러 과일을 샀다.
언니의 지인에게 인사도 드렸다.
염색한 지 한 달이 넘어 흰 머리가 신경 쓰인다.
집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다.


형부 옷을 사러 간다며 언니는 “양복이 또 필요하다”며 짜증을 냈다.
그 사이 조카 부부가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조카가 반갑고, 처음 만난 조카사위는 믿음직스럽다.
반가움이 격하게 터지고, 이내 식탁 앞에 둘러앉는다.


새우, 파스타, 그리고 어젯밤에 사서 핏물을 빼고 양념에 재워둔 갈비를 형부가 구워 주었다.
샐러드까지 곁들이며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옆집 중국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겠다며 언니는 한 접시 덜어다 준다.
언제나 퍼주기를 좋아하는 언니다.


식사 후, 장례식에 쓸 꽃을 사기 위해 언니 부부와 조카 부부가 나갔다.
막내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과일을 먹으며 조카 부부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맨하탙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조카사위는 다부지고 지혜로웠으며, 무엇보다 마음이 선했다.


오후에는 주니퍼 공원에 산책을 갔다.
넓은 공원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이 싱그럽다.
테니스 코트만도 여러개이고, 주니어용 코트 두 개가 따로 있었다.
농구장, 물놀이장, 줄지어 선 그네들 — 아기용 그네도 있다.
곳곳에서 가족 단위로 파티를 즐기고, 젊은이들은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잔디 위를 구른다.
공원 가득 생기가 흘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형형색색의 정원들을 구경했다.
울타리를 두른 집, 자갈로 꾸민 집, 나무조각을 깔아 둔 집.
땅이 드러나면 보기 싫다며, 관리가 어렵거나 게으른 사람들은 돌이나 나무조각으로 덮는다고 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형부가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넣어 두었다.


저녁에는 언니의 생일을 축하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나누며 선물을 주고받았다.
조카는 나에게 스카프를, 남편에게는 티셔츠를, 막내에게는 향수와 립스틱을 선물했다.
형부에게도 티셔츠를 드렸는데 작았다.
서울에서 사 온 닥스 셔츠도 작았는데, 괜스레 안쓰러웠다.


조카 부부가 돌아간 뒤에는 염색약을 사 와 머리를 염색했다.
언니 지인들에게 단정한 모습으로 인사하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이번엔 가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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