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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ㅡ식사

가족여행 33일 차 :

by 있는그대로

몇 번이나 지나쳤던 센트럴파크, 드디어 간다.
배우 하정우가 좋아한다던 그곳, 뉴욕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조카가 맨해튼에 산다. 월세가 5,000달러라는데 집이 얼마나 작은지 앉을 자리조차 없다고 했다. 언니는 “그 돈이면 집을 샀겠다”며 몇 번이나 이사하라고 잔소리를 했다. 직접 가서 보니, 입구부터 회전문과 프런트, 대리석 벽면이 마치 호텔 같았다. 호수도 801, 802가 아니라 8A, 8B 식으로 되어 있었다. 침실 하나,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였지만 언니 말처럼 작지도 않았다. ‘비쌀 만하네.’ 우리 모두 그렇게 말했다. 수입이 많으니 가능한 일이고, 삶의 기준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조카 집에서 센트럴파크까지는 걸어서 5분.
미국 최초의 인공공원, 도시 한가운데 숲을 만든 센트럴파크는 정말 웅장했다. 남편은 트럼프 빌딩 맞은편 입구에서 자전거를 빌려 두 시간을 타기로 했다. 우리는 조카 부부와 함께 공원 안을 걸었다. 넓은 잔디 위로 사람들이 앉아 일광욕을 하고, 파티하는 무리, 악기 연주자, 노래 부르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복잡하지 않았다. 자전거, 마차, 아이들을 태운 수레까지 — 자유롭고 활기찼다.


큰 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려 그늘을 만들고, 분수대와 다리를 지나며 사진을 찍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다리 위에서도 한 컷, 비틀즈 존 레논이 살았던 ‘다코타 빌딩’을 배경으로 또 한 컷.
우뚝 솟은 빌딩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었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한 시간 반쯤 걸은 후 음료를 사려 했는데 줄이 길었다. 식당 자리가 없어 잔디밭 바위 위에서 음료를 마셨다. 그 옆에 커다란 타월을 깔고 앉은 여자 셋이 있었는데, 딱 봐도 한국인 같았다. 은박 돗자리 대신 담요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멀리서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두 시간이 지나 자전거를 반납하고, 조카 부부와 막내는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갔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쉬었다.
잔디밭에서는 축구와 야구 경기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화장실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앞에 있던 아빠가 어린 딸을 데리고 있었는데, 여자화장실에 들어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아이 때문에 난감해했다. 청소하는 사람이 옆에 아이용 화장실이 있다고 알려주어 다행히 해결됐다.

공원 곳곳에는 기부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공간을 누리는구나 싶었다. 호수에는 거북이들이 여럿 떠 있었고,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저으며 잡으려 애썼다.


다시 걷다 보니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까지 — 정말 다양했다. 자유로움이 공기처럼 흘렀다. 언니는 지나가며 연주자 모자에 돈을 넣었다.
검은 비닐봉지를 어깨에 멘 사람이 캔을 주워 담고 있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원이니 그것도 하나의 생계였다.


공원의 일부분만 걸었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오후 5시, 공원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맨해튼 거리를 한참 걸어 형부와 만났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치즈와 오징어튀김이 짰고, 피자와 치킨, 스파게티도 간이 셌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니 주차비가 70달러. 우리나라처럼 식당 주차쿠폰은 없었다. 맨해튼 물가는 정말 비쌌다.


조카가 안 쓰는 캐리어를 준다기에, 네 사람은 형부 차를 타고 가고 나와 언니, 조카사위는 걸었다.
길가에는 좌판이 늘어서 있었고, 집에서 쓰던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
식당 밖 인도나 도로 한편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코로나 이후 실내 대신 이렇게 바깥에서 식사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 가장자리에 앉았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 웃으며 식사하고 있었다.


도로 옆에는 분홍 자전거에 인형이 잔뜩 매달려 있었는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의 것이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조카 집에 들러 캐리어를 들고
밤길을 달려 맨해튼에서 퀸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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