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34일 차
퀸즈에 있는 80만 불 정도의 집은 세금을 한 해 네 번, 한 번에 1,500달러씩 낸다고 한다.
우리 집 재산세가 올랐다고 불평했는데, 뉴욕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더 많은 사회복지를 받기 위해 세금을 내지 않고 현금을 집에 쌓아두는 한인들도 많다고 한다.
그중 한 사람은 평생 모은 80만 불을 도둑맞고도 신고조차 못 했다 한다.
또 어떤 이는 자식에게 재산을 다 나눠주고 양로원 신세가 되었는데, 자식들이 일 년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다.
언니 친구도 현금을 집에 쌓아두며 세탁기도 없는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이른 아침,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언니가 공원 산책 후 먹을 해물탕을 끓이고 있었다.
새우와 전복이 큼직하고 살이 두툼했다. 꽃게, 주꾸미, 낙지, 홍합, 백합까지 들어간 국물은 진하고 깊었다.
한인 가게에서는 해물이나 과일, 계란 등을 종종 공짜로 얹어 준다고 한다.
서로 돕고 나누는 정이 여전히 살아 있는 듯했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알리 파운드 공원에 갔다.
막내는 아직 자고 있어서 두고 나왔다.
중간에 언니 친구를 픽업해 함께 걸었다.
공원은 울창했고 오솔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중 한국인이 더 많았다.
만 보를 걸은 후 언니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해물탕을 두 그릇이나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시티투어를 했다.
타임스스퀘어에서 출발해 거리를 지나
허드슨 강가의 인공섬 ‘리틀 아일랜드’에 갔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하이힐 여러 개가 모여 있는 듯한 독특한 구조물이었다.
꽃과 나무, 잔디가 어우러져 인공섬이라 믿기 어려웠다.
언덕 위에 앉아 아이스크림($3)을 먹으며 쉬었다.
노을을 보기 좋은 벤치들도 마련되어 있었다.
휘트니 미술관에 들어갈 때는 간단한 가방 검사를 했다.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해서 기프트샵만 잠시 구경했다.
이어서 폐쇄된 고가 철로를 공원으로 만든 하이라인으로 향했다.
화분과 나무, 꽃으로 꾸며진 길을 걷는데
서울의 ‘서울로 7017’이 떠올랐다.
철길의 흔적을 그대로 두고 주변 건축물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곳곳의 조형물도 흥미로웠다.
특히 커다란 분홍빛 나무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허드슨 파크의 거대한 철제 구조물 ‘베슬(Vessel)’에도 들렀다.
2,50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인데, 자살 사고가 잦아 지금은 1층까지만 개방 중이라고 한다.
집에서 싸 온 김밥을 베슬을 바라보며 먹었다.
더 샵(The Shops) 백화점 1층은 온통 명품관이었다.
들어가 보지는 않고 눈으로만 구경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BTS 전용 매장이 있었고,
유니클로와 자라 같은 익숙한 브랜드도 보여서 마음이 편했다.
야경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엠파이어스테이트 전망대는 시간이 맞지 않아 환불하고
1층에서 사진만 찍었다.
어둠이 내리자 막내가 H&M에 들어가 급히 세일 중인 티셔츠를 하나 샀다.
타임스스퀘어로 향하니 여전히 인파가 가득했다.
공연, 악기 연주, 스파이더맨과 미키마우스 인형탈을 쓴 사람들이 사진을 권하며 손을 잡아끌었다.
모두 돈을 받는 사람들이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뒤돌아보니 그들이 받은 돈을 세고 있었다.
타임스스퀘어의 커다란 광고판들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안경 광고,
서로 합쳐지는 화면들,
그 속에 서 있는 사람들도 하나의 풍경이었다.
야경투어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길이 붐볐지만
우리는 예약해둔 덕분에 여유로웠다.
가이드의 영어 설명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불빛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러웠다.
빨간 의자에 앉아 새해맞이 공이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다리를 건너며 본 야경은, 말 그대로 찬란했다.
맨해튼을 3만 보 넘게 걸었다.
제네시스 빌딩과 삼성 간판을 보니 괜히 반가웠다.
밤 11시가 넘어도 불빛은 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래도 공간이 넓어 숨이 막히지 않았다.
역시 뉴욕이구나.
이래서 다들 ‘뉴욕, 뉴욕’ 하는구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경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우버는 금세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