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조기와 꼬리곰탕을 맛있게 먹었다. 언니집에는 대형냉장고 4대에 먹을 것이 꽉 차 있다. 가정집이 아니라 마트 같다. 된장 고추장을 담은 항아리와 각종청과 장아찌 항아리도 많다. 심지어 커다란 고무다라이며 건어물 말리는 망도 있다. 없는 게 없다. 한국 우리 집 보다 더 많은 식재료가 있고 다양한 요리를 해 먹는다.
장례식
목요일 돌아가셨지만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이 휴일이라 화요일 장례를 시작했다. 휴일 스케줄이 있는데 휴일에 장례를 하는 것은 실례라고 한다.
장례식장 조문 시간은 오전타임 8시에서 12시
오후타임 3시에서 8시라고 한다. 1~3일 조문 시간을 갖고 장례미사를 하고 장지 공동묘지로 간다. 동네에 많은 비석들이 모여 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의자가 놓여 있고
정면에 관이 놓여 있고 돌아가신 분이 곱게 누워있다. 주위로 화환이 있고 왼쪽 오른쪽으로 가족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붙이는 자석판이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사진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빨간 장미로 된 화환은 가족이 보낸. 것이고 하얀 류의 화환은 지인들이 보낸 것이라고 한다.
화장을 곱게 하고 누워 있는 고인의 손에는 묵주가 들려 있고 관 주변의 로 장미꽃 장식이다. 시체를 본다는 것이 섬뜩하리라 생각했는데 관속에 누워 있는 고인의 모습은 곱고 평온해 보였다.
왼쪽으로 명함보다 조금 큰 크기로 돌아가신 분의
사진이 있고 뒷면에는 태어난 날 돌아가신 날이 적혀 있고 성경구절이 적힌 카드? 가 코팅되어 준비되어 있었다. 출입구 쪽에 방명록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부의금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조문객은 관 앞에 마련된 장의자에 무릎 꿇고 고인과 인사ㅡ기도를 하고 가족들과 인사한 후 의자에 앉아 있다. 오는 사람들과 얘기.
가족들은 검은색으로 입었는데 나시티만 입고 온 사람도 있고 청자컷을 입은 사람도 보였다.
장례식장 밖에 물은 있지만 음식 커피는 없었다.
87세의 나이와 10년간의 병상생활ㅡ파킨슨ㅡ로 크게 우는 사람은 없고 일상적이다.
비행기 탈 시간이 되어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가니 공사 중이라 복잡하게 들어갔다. 샌프란에서 뉴욕으로 갈 때는 수화물 가방 1개만 사고 작은 캐리어 2개는 무료로 해 주었는데 뉴욕에서 샌프란 갈 때는 캐리어를 들고 탔다. 샌프란에서 올 때는 가볍게 와서 뉴욕으로 갈 때는 물건을 많이 사 수화물 공간이 없나보다고 추측했다. 체크인하는데 줄을 서서 많은 시간이 걸렸다. 2 사람씩 거리 늘 두고 일정한 시간을 두고 들어 가는데 경찰 두 명이 커다란 개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이 지나 가면 개가 왔다 갔다 냄새를 맡았다. 마약견인가 싶었다.
비행기가 연착되고 면세점 구경을 했다. 혹시나 해서 내가 산 랑콤크림을 보니 $115. 나는 캐나다 면세점에서 캐나다 달러로 $112. 주고 샀다. 캐나다 달러가 미달러보다 20% 정도 싸다고 하니 횡재한 느낌으로 기분이 좋았다. 남편이 산 술도 20달러씩 저렴했다고 한다.
드디어 비행기 탈 시간. 비행기를 탈 때도 비싼 비행기표대로 타는지라 우리는 젤 마지막으로 들어갔는데 짐들을 싣느라 많이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어 들어갔지만 캐리어를 넣을 곳이 없었다. 올려져 있던 백팩과 옷들을 슴무원이 꺼내 발밑에 두라 하고 캐리어를 올려 주었다. 우리 뒤로 들어온 사람들은 자리와 많이 떨어진 곳에 두기도 했다.
6시간 비행에 두 번 음료와 간식을 주었다.
쿠키와 견과를 주는데 맛있다. 주스 물 콜라 사이다에 얼음도 채워준다. 쿠키가 맛있어 하나 더 달라고 하니 2개를 더 준다. 갈 때도 느꼈지만 덜타항공 서비스가 좋다.
비행기소리는 시끄럽고 출발할 때 기름 냄새가 났다. 영화 게임 드라마가 있지만 집중은 잘 안된다. 스도쿠와 체스를 종. 하다 자다 하니 벌써 도착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반갑다. 늦은 시간 딸과 사위가 마중 나와 딸 집. 도착.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는 3시간 차.
남편은 더 이상 시차가 있는 곳은 여행하지 않겠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니 서늘하다.
역시 샌프란은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