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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날

가족여행 36일 차

by 있는그대로

어제 새벽에 도착한 탓에 사위도 피곤하다며 늦잠을 잤다. 딸도 학교 가기 싫다고 투덜거리다 마지못해 나갔다.
나는 하얀 쌀밥에 김치를 얹어 먹었다. 단출하지만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다. 차려주는 진수성찬이 가난한 입에는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막내는 계란간장밥, 남편은 누룽지로 아침을 대신했다.

사위가 타는 접이식 자전거가 마음에 든다며 남편이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박스가 컸다. 이리저리 따져보니 한국까지 들고 가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다. 결국 반품하기로 했다. 남편은 못내 아쉬워한다.

한가한 오전, 오랜만에 진짜 쉼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쫄면. 매콤한 양념에 입맛이 돌았다. 식사 후 동네 산책에 나섰다.
딸 친구가 여행을 가며 맡긴 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갔는데, 동네가 훨씬 쾌적하고 집도 넓었다.
그 친구는 인도인이고 남편은 미국인으로, 버클리대 박사과정이라 집세 보조를 받는다고 했다.
요즘 사위가 집값과 급여 문제로 예민해 있으니 조심하라는 딸의 말이 생각났다. 포닥(박사후연구원) 월급으로 매달 2,700불의 집세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심심했던지 처음 보는 나에게도 다가와 몸을 비비며 가르릉거렸다. 검은 원피스에 하얀 털이 잔뜩 묻었다.

마트에 들러 몇 가지 집었을 뿐인데 계산대에 찍힌 금액은 80불이 넘었다. 물가의 무게가 실감난다.
저녁은 콘치즈와 스테이크로 하루를 마감했다. 식탁에는 웃음도, 피로도 함께 있었다. 모두들 슬슬 집이 그립다고 말한다.
막내는 아직 2주가 남았지만 비행기표를 바꿔 우리와 함께 가고 싶다고 한다. 남편도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딸 부부의 집에는 세탁기가 없어, 사위가 퇴근 후 빨래를 들고 빨래방에 다녀온다. 세탁하고, 밥 먹고, 건조기 돌리고, 다시 가지러 가야 한다. 빨래도 하루의 일이다.

사위는 음악을 좋아한다. 저녁이면 무드등을 켜고 음악을 튼다. 턴테이블이 두 대, LP판이 200여 장. 작은 거실이 음악다방이 된다.

왕복 135만 원짜리 항공권이었는데, 막내가 편도만 바꾸려니 150만 원을 더 내야 한단다. 결국 예정대로 남기로 했다.
여행은 길어지고, 마음은 조금씩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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