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급 인간

by 있는그대로

“왜 울어?”

“아니 그냥, 눈물이 나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막내가 당황스럽다. 엄마 보니까 눈물이 나나 보다고 옆에서 한소리들 한다. 부둥켜안고 같이 운다. 옆에서 남편도 큰 딸도 사위도 여니도 눈이 촉촉하다. 연극을 보고 난 후여서 일까, 막내의 긴장 때문일까? 그렇게 한참을 둘러서서 울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린다.


막내는 모든 것이 저절로 주어지고 자기는 좋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학교를 어떻게 보낼 거냐고 옆에서 걱정을 할 정도로 막내는 챙김을 받으며 살았다. 유치원까지는 잘 다녔는데 초등학교 2학년부터 머리 아프다 배 아프다 하며 학교를 간간이 빠졌다. 중3이 되니 학교에 불만이 많아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자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정해진 틀에 맞춰 살아온 내 상식으로 중퇴는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성적은 아무래도 좋으니 졸업만 하자고 달랬다. 막상 학교를 다니니 대학진학을 원하게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 펑펑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자퇴를 시키고 검정고시를 준비했어야 하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재수를 하는 동안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 볼 때, 딱 두 번 현관 밖을 나갔다. 피부는 희끄무레 병자 같았다. 결과가 또 안 좋았다. 실망보다도 막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불안이 더 컸다. 3수를 하며 또 집에만 있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평생교육원에 독학사라는 것을 알게 되어 고등학생인 듯 대학생인 듯 재수생인 듯 2년을 다니며 영문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다. 대학원진학을 권유했으나 정식으로 캠퍼스 생활을 하고 싶다며 편입을 시도했다. 10여 곳 원서내고 대부분 합격통지를 받고 자존감이 올라갔다. 코로나로 캠퍼스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줌 수업을 했다. 작년 가을학기에 대면수업으로 학점도 잘 나오고 보드, 배드민턴, 연극, 영화, 팟 캐스트 동아리를 5개나 들어 정신없이 다녔다. 생기 뿜뿜. 뿜어내는 싱그러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이 솟게 했다. 연극 무대에서의 막내는 생기 있었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스크린에서 반짝였다. 엄마 나 배우 할까 하는 뜻밖의 말에 동아리에서의 경험은 취미이지 직업은 아니라고, 잘 하긴 하지만 이건 대학가에서 이고 실제 연예계생활은 다르다고, 너 벌써 스물다섯이고 뛰어난 미모 뛰어난 연기력도 아닌데 직업으로 할 것은 아니다.라고 달랬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말하는 흥분된 막내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말을 하면서도 편하진 않았다. 스스로 시도하고 포기하게 할 수도 있을 텐데 기다리지 못하고 ‘안 된다’ 결정을 정해주는 내가 못마땅했다.


졸업반이 되니 무엇을 할지 생각 좀 해 봐야겠다며 한 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했다.

피디를 하면 좋을 거 같다며 연극연출을 한다고 해서 응원을 해 주었다. 연출은 대본을 고르는 일부터 교수님 결재 팀워크, 배우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을 잘 끌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처음으로 책임지고 해 보는 큰일이다. 대본을 고르고 배우면접을 하고 처음에는 신나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보다 힘듦이 묻어났다. 몇 달간의 연습을 끝내고 드디어 대학 내에서 공연을 했다. 무대에 올라가 인사를 하는 모습이 내 딸 막내가 아니라 멋진 연출가의 모습이라 약간 당황스럽고 어색하다. 항상 안아주고 업어줘야 하는 아기로 알았는데 아기가 아니다. “이제 보니 아기가 아니네, 어른스럽고 멋있다.” 한마디에 울음보가 터졌다. 그동안의 긴장과 부담이 한꺼번에 터진 듯하다. 막내를 둘러싸고 가족들 모두 눈시울이 젖어 울먹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커다란 꽃다발을 전한다. 친구가 꽃다발만 전해주고 갔다. 우리가 둘러싸고 울고 있어서 먼 곳까지 왔다가 그냥 갔나 보다. 미안하다.

아기가 태어나고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마음이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공부 잘하길 바라고 고등학생이 되면 무조건 스카이를 바라보며 1등급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대학이 결정되면 약간의 내려놓음이 생기지만 또다시 취직, 1등급 신랑과 결혼하기, 1등급 아이를 원하여 다시 반복되는 사회.. 연극을 보며 일등급인간을 만들기 위한 여정과 힘듦이 나를 막내를 남편을 딸들을 우리 모두를 보는 것 같아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음에 감사하다. 잘 견뎌온 막내에게 고맙다.

막내가 선택해서 끝까지 해 낸 연극연출이다. 잘했어. 힘들었겠지만 조금 더 단단해졌다. 어렸을 때 하고 싶다는 것을 하게 하여 성공하는 기쁨의 경험을 하게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이제라도 막내에게 거리를 두기로 한다.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더 나은 선택 바른 선택을 하도록 기다려 줄 여유를 갖기로 한다. 하나를 완성해 본 경험이 또 다른 일을 해 볼 자신감을 줄 것이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이 일 등급은 아닐 것이다. 남의 시선이 아닌 내 기준으로 선택하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만족하고 살아가는 삶이 일 등급은 아닐까. 막내가 진정한 일등급인간 ㅡ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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