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심리학
둘째는 장난기가 많다.
정도가 넘치다 못해 흘러내릴 정도다. 근거로 수십 가지 말할 수 있지만 딱 세 가지만 얘기해 보자면.
1. 언니 역할놀이 와해작전
그녀는 언니의 요리사 놀이를 가만히 지켜본다. 언니가 피자, 케이크, 사과 등 한상 차린 후 엄마를 부르러 가자말자 식탁을 뒤엎고 피자 한 조각 들고 도망친다. 달음박질이 어설퍼 곧 언니에게 잡혀서 꿀밤 맞아도 오뚝이처럼 또 도전한다.
이를 보고 장인어른 왈,
"하는 게 꼭 고무줄 끊고 도망치는 남자애 같냐"
2. 갈까 말까 놀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결코 그냥 타는 법이 없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만 서면 들어갈까 말까 놀이를 시전 한다. 불러도 실실 웃으며 들어오지 않고 잡으러 가면 부리나케 도망간다. 결말은 내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강제 탑승한다. 물론 그녀는 웃고 있다
3. 몰래 던지기
아빠엄마 없을 때 뭐든 던져버린다. 화분의 돌을 흩뿌리며 던진다던지, 휴지를 변기에 던져 휴지산을 만들고, 높은 곳에서 제 몸을 내던져 입술이 터지는 등 던지기 본능이 유별나다. 한 번은 화분의 돌을 던지려는 순간 내게 현장을 잡힌 적 있다. 스릴과 당황함이 만연했던 그녀의 표정은 두고두고 생각나는 웃음포인트다.
우리는 이런 둘째에게 별명을 붙여줬다. 이른바 '부산이'.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돌아다녀서 붙여진 이름이다. 놀거리를 찾아 돌아다니고, 아빠에게 장난치고 도망가며 웃는 게 그녀의 일상이다. 그녀는 늘 행복하고 재밌다. 분명 또래 중에서 평균이상일테고 우리 가족 중에는 가장 행복한 건 틀림없다(첫째는 어린이집으로 약간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라 제외) 저 행복감이 지속되는 비결이 뭘까하며 둘째를 관찰해 보니, 언제든 최선 다해 놀겠다는 태도가 이유 같았다. 뻔해 보이지만 이 태도는 사실 매우 중요한 행복 요소다.
이런 측면에서 마틴 셀리그만이 창시한 긍정심리학은 흥미롭다. 그는 인간 내면의 병리적 문제를 진단, 처방하던 과거 연구에서 벗어나, 인간의 긍정적 잠재력과 번영,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의 증가를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주장 중 '순간을 음미하라'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즐거움이 발생하는 그 순간을 포착 및 누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플러리싱(flourishing)을 맛볼 수 있다 한다. 그는 또한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행복을 만개하는 순간은 관계 속에서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긍정심리학에 관심 갔던 이유는 내 삶과 정반대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보다 미래를,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했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이게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될까가 우선이었다.
가장 찬란했던 20대가 아까워 많은 걸 했지만(무전여행, 키부츠, 영국살이, 호주막노동)
순간을 즐겼던 기억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돈에 메이고 영어에 치였던 순간들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아빠가 되고 나서 좀 변하긴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을 포착하려 노력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 시간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임하려고 마음 먹어도 나도 모르게 옛 습관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아이와 레고블록을 쌓으면서 집안일을 해치우고 빨리 쉴 생각을 한다던지, 역할놀이 중 회사 프로젝트를 고민하는 등 순간에 집중못하는 모습이 너무 만연했다.
마틴 셀리그만에 따르면 난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것 뿐 아니라, 딸들과의 관계도 위축시킴으로 참 플러리싱을 경험하지 못하며 살고있다. 개선이 필요하다. 긍정심리학을 활용해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이론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그러다 둘째랑 같이 놀다가 아하 싶은 깨달음을 경험했다.
둘째가 호탕하게 웃는모습이 웃겨 나혼자 깔깔 웃을때가 종종있다. 한번은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10분가량 내내 웃기에만 몰입하더라. 순간 이게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참된 태도 아닐까 하는 깨달음이 스쳐갔다.
생각해보니 둘째는 20대 내 모습과 정반대다. 그녀는 뒤가 없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놀때면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전부인냥 최선을 다한다. 이런 생각 후 둘째를 다시보니 철 없는 아기가 아니라 긍정심리학의 대가로 보였다. 그녀를 모방해서라도 배워야겠다 결심했다.
둘째가 제일 싫어하는 일은 옷 입기다. 옷을 입힐 때면 어찌나 아등바등하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마치 부녀가 레슬링 혹은 주짓수를 하는 걸로 착각할 정도로 과격한 몸짓이 오간다.
팔을 낚아채어 옷안으로 밀어넣으면 짜증을 내다 냅다 울어버린다. 그러다가도 어떻게 간지럽혀지면 호탕하게 웃는다.
크하하하하하. 그 순간, 지금이야말로 노력와 의지를 써서 순간을 포착해야할때라는걸 느꼈다. 먼저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는다. 옷입는게 뭔 대수라고.. 혼잣말도 해본다. 그제야 옷 입히기 라는 과업을 내려놓고 그 순간을 즐기는데 집중해본다.
크허허허허. 온몸에 퍼져있는 짜증과 피로가 싹 증발하는것 같았다.
이렇게 웃고 보니 회색 같던 20대가 왠지 보상받는 기분이다. 육아로 아이만 크는 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