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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워터 May 13. 2023

깊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 새벽사투

코막힘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 토닥토닥

최근 둘째는 코가 막혀서 새벽에 자주 깬다.  지긋지긋한 콧물이 원인이다. 아이가 잠에서 깨면 어떤 방식으로든 편한 자세를 찾아줘야 한다. 그날의 온습도와 주위 지형에 따라 원하는 포즈가 다르기 때문에, 정신 바짝 차리고 자세를 요리조리 바꿔줘야 한다. 원하는 자세를 빨리 찾으면 사건은 평온한 밤의 일탈로 종결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체되어 둘째와 눈빛교환이 이뤄지면 그때부터 처절하고 외로운 새벽사투가 시작된다.


그날도 둘째는 새벽 1시에 깼다. 약간의 끙끙대는 소리가 느껴지자 부리나케 이불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자신감 넘치는 핸드 무브먼트를 선보이며 요리조리 자세를 바꿔줬다. 어제 새벽처럼 금방 잠들 것 같았다. 그러나 딸내미는 불편한 기색을 점점 더 표출하더니 결국 공포의 눈 맞춤이 이뤄졌다. 두려움이 파도처럼 쏠려왔다. 둘째는 내 딸이지만 무서울 때가 있다. 잠을 자지 않겠다고 죽어라 울어서 후두염에 걸렸고, 주삿바늘이 싫어 팔에 힘을 주다가 모세혈관이 두 번 터져 입원을 거절당한 전적이 있다. 한마디로, ‘한 성깔’ 한다. 낮에 성깔을 부리면 쪼그만게 귀엽네라며 아내와 웃음으로 승화시키지만 새벽이 되면 전혀 다른 장르가 된다. 목숨을 건 사투의 액션과 쫄깃한 긴장감이 무섭기까지한 스릴러가 펼쳐진다.


처음에는 코가 막힌 것 때문에 우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토닥여준다. 그러나 아이가 성질을 부리며 감정적 날을 세우기 시작하면 나도 쌍칼을 들고 전장에 참전한다. 등 두들기는 손에 감정이 실리고 한숨과 호통을 동반한다. 이렇게 고군분투해서 잠을 재우지만 내가 다시 잠들려 하면 어김없이 깨서 울어버린다. 그 울음은 불편함이 아니라 짜증과 화가 담겨있다. 어린 아기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하냐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시라. 고막을 긁어대는 그 울음소리는 마음 밑바닥까지 짓이긴다. 


그날은 특히 정도가 심했다. 자다 깼다를 대여섯번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 반이었다. 순간 온갖 짜증이 올라왔다. 잠도 못 자고 출근해야 한다 생각하니 순간 화가 났고 둘째가 잠들자마자 거실로 나왔다. 거실소파에 앉아있으니 딸내미의 대성통곡이 다시 들려왔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피를 토하듯 기침하며 울어댔다. 후두염에 걸릴까 걱정되어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다가도 내 안의 분노가 온몸을 단단히 짓눌렀다. 니 딸이잖아 가서 다시 안아줘야지 하는 생각과, 아니야 이번에 제대로 훈육해야지 라는 속삭임이 서로 싸웠다. 처음으로 얄미운 감정이 들었고 곧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아빠인가.


다시 돌아가 둘째를 가슴팍에 안고 재웠다. 등을 두드려주는데 등짝이 내 손바닥 만했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존재라니. 문득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둘째는 분리불안이 있는 시기니 더 사랑해줘야 한다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니 곧바로 잠들었다. 세 시간 동안 그렇게 두들기고 문질러도 기미조차 없던 렘수면이 1분 만에 찾아온 것이다. 아이가 등을 통해 내 마음을 느낀 것 같았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손을 위로 뻗으니 오목한 뒤통수가 만져졌다. 다음 새벽에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줘야겠다 다짐하고 눈을 감았다.

새벽사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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