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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워터 May 13. 2023

말문 트인 28개월 아이가 쓴 편지

고모를 향한 사랑고백, 풍성한 가족관계

첫째가 말을 하기 시작하니 우리 집은 훨씬 풍성해졌다. 아빠, 엄마한테만 있던 언어물줄기가 첫째한테도 터져 나와 우리 집은 조경수역처럼 다양한 언어 스파크가 일어난다. 얼마 전 고모생일에 첫째가 선사했던 화려한 입담이 그 예다.


첫째는 고모를 좋아한다. 첫 조카를 극진히 이뻐하는 고모의 리액션이 마음에 든 것 같다. 우리 가족은 고모생일 당일저녁에 방문에서 선물만 주고 오기로 했다. 첫째는 고모를 위해  제일 아끼는 장난감 문어, 딸기, 옥수수, 케이크 등을 선물박스에 한껏 채웠다. 그리고는 엄마와 편지를 썼다. 글을 모르는 28개월 아이라 자신이 읊으면 엄마가 대필하는 식으로. 생일 축하기념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하니 첫째는 고민 후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고모 선물 줄 거야.

문어 줄 거야.

딸기 줄 거야.

오이 줄 거야.

옥수수 줄 거야.

체리 줄 거야.

젤리 줄 거야.

생일축하 줄 거야.   


한 편의 시가 탄생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주는 것이 행복이라는 종교적, 철학적 메시지가 운율 속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선물과 편지가 준비됐고 우리는 고모집에 방문했다. 정신없는 저녁식사 시간 후 대망의 선물증정 시간이 왔다. 먼저 선물을 오픈했다. 준비한 각종 야채와 디저트를 정성껏 꺼내어 플레이팅 했다. 그리고 고모는 첫째의 편지를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첫째는 고모를 멈추게 하고 직접 낭독하기 시작했다.


고, 고, 고모 문어줄 거야.

오이 줄 거야. 포도 줄 거야.

배, 배, 배추줄 거야.


비록 편지지에 쓰인 내용과 다른 즉흥시였지만(약간의 말 더듬을 수반한), 완벽한 타이밍과 방법으로 생일파티 피날레를 장식했다. 경이로웠다. 갓난아기 때부터 갖은 몸짓과 행동으로 기쁨을 줬던 첫째가 이제 언어로 아빠를 행복하게 하다니. 안타깝게도 아빠는 이 황홀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없다. 기쁨보다 환희가 맞는 표현일까. 나는 평생 동생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준 적이 없다(동생을 제외하면 우리 가족은 선물을 주고받는데 서툴다) 기뻐하는 동생의 얼굴을 보니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선물을 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생일 축하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첫째는 차에서 뻗어버렸다. 고모에게 줬던 선물들 고대로 손에 꼭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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