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랑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코로나 감염자가 됐다

by 무나나나

최근 재미있게 본 웹툰 중에 ‘위아더좀비’라는 작품이 있다. 만화는 서울 한복판 초대형 쇼핑몰에서 갑작스럽게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좀비가 되면서 시작된다. 정부가 즉각 대응해 좀비 소탕작전 펼치고 생존자를 구출해낸다. 해당 건물은 원천 봉쇄돼 ‘좀비 존’이 된다. 놀라지마시라. 여기까지가 1화 초반의 이야기다. 진짜 이야기는 정부의 구출 대상이 되지못한 생존자들이 밝혀지며 시작된다. 생존자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이 좀비 존에 남아있다.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남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조용히만 지내면 좀비들로부터 안전할 뿐 아니라 세상으로부터도 안전한 곳에 일부러 갇힌 사람들. 공소시효가 지나길 기다리는 범죄자부터 출근하기가 싫었던 회사원까지, 많고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공통점은 ‘합법적으로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것이다.


좀비 만화인데 좀비들과의 싸움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보통같으면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끼리 벌일만한 재화를 둘러싼 싸움이나 생존자 그룹내에서 생기는 권력다툼 같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좀비물에 기대할법한 스릴은 없지만 일상 에세이를 보는 듯 슴슴한 재미가 있다. 내가 이 만화를 재미있게 보는 건 다같이 망해서, 어쩔 수 없어서, 합법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갇혀버리고 싶었던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취준생, 직장인을 거쳐 아기 엄마가 될 때까지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세계가 멸망의 길로 접어든데도 일상생활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는 공간에 고립된다면 오히려 남들이 이루는 성취와 나의 것을 비교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고, 내가 하기로 했다가 하지 못한-않은- 수많은 일들에 대한 정당한 핑곗거리도 생기리라 기대했다.


그런 맥락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1년쯤 계속돼 모두가 각자의 집에 머무르는 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매일 저녁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사람이나 매달 멋진 곳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사람이 없어졌으니까) 쉬는 시간이 생기면 침대에 누워 ‘이 시간에 뭔가 밖에 나가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느끼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다들 집에 있으니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야하는 일도 줄어들고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만나자”), 저녁 회식도, 주말 출근도 사라졌다. (주말에는 집에서 일을 하게 됐지만 그래도 주말에 회사에 나가는 것 보다는 나았다) 임신을 하고 나서는 코로나에 걸릴까 두려운 마음도 늘 있었지만 동시에 좁아진 나의 행동 반경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아 얻게된 편의성도 있었다. 다들 발리며 푸켓이며 머리 나가 여름 휴가를 즐기던 때 산후조리원에 누워있었다면 정신적인 고통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해서일까? 사실은 게을러서 아기 옷 갈아입히고 나갈 채비 하기가 귀찮아 집에만 있는거였으면서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고 탓해서일까? 평생을 해온 ‘쉬는날 집에 있기’를 마치 방역을 위한 영웅적인 행위처럼 치장해서? 이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250여일째 아기랑 매일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코로나 감염자가 됐다. 최근엔 하루에도 여러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남편도 아닌 내가 제일 먼저. 어디서 걸린걸까? 역시 그날 아기 데리고 처음으로 외식했던 곳에서 걸린걸까? 아니면 그 전에 혼자 갔던 이마트에서? 어디에서건 뭐가 그리 중요하랴. 어쨌든 나도 하루에 30만명씩 발생하는 코로나 감염자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는 사실만이 중허지. 열이 38도를 넘길래 집에서 코를 세번이나 찔렀지만 계속 음성이었는데, 병원에 가서 뇌까지 닿을 정도로 면봉을 쑤셔넣으니 비로소 양성이 됐다.


개인적으로 증상은 경미했다. 열은 하루만에 내리고 기침이 나긴했지만 인후통은 심하지 않았다. 250여일만에 아기와 떨어져 방에 혼자 갇혀있으려니 자유가 느껴졌다! 문 밖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좌불안석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혼자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40분짜리 요가 영상도 따라할 여유가 있으니 솔직히 좋기도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일주일 푹 쉬어보자. 좀비아포칼립스 뭐 별거 있어?


하지만 상황은 아기가 열이 나기 시작하면서 하루만에 종료됐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물고빨고 안고 난리를 치는데 안 옮고 배기나. 남편이 안옮았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아기에게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뽀뽀를 하는데. 그리고 이어서 남편도 열과 기침, 두 사람 모두 양성. 이걸로 보기 좋게 코로나 가족이 되었다.


밤새 열 나는 아기 곁에서 체온을 측정하고, 물수건 찜질을 하고, 해열제를 먹이다 문득 이게 다 이 ‘대 코로나 시대’를 우습게 본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로 몸이 아파지고 심각하면 사망에 이를수도 있는 이 질병을 방구석으로 도망갈 기회로 봤으니 이 꼴이 난거 아닐까. 아니 내가 나서서 임신하고 출산해놓고 때때로 도망치고싶어해서 이렇게 된건 아닐까. 후회하고 반성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아기 밥먹이고 약먹이고, 나도 남편도 약 먹고 밥 먹으면서 그렇게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저를 괘씸하게 여겨 병을 내리신 신께서 보신다면, 다만 아기만은 너무 아프지않게 해주세요. 다시는 도망치려고 하지 않을게요!

해열패치까지 붙였지만 활발해서 다행이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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